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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May 13. 2022

환상

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특히 소설이나 영화 같은 서사의 영역에서 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환상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다. 환상을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간을 달리하는 것이다. 앨리스는 토끼의 인도로 이상한 나라에 빠져들었고, 해리포터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호그와트로 들어갔다. 공간의 이동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 속 세상이 현실과 얼마나 단절되어 있느냐 혹은 현실과 얼마나 유사한가에 따라 환상의 농도가 만들어진다. 흔히 ‘말하는 동물’이 등장하는 만화 영화는 현실과 매우 떨어진 듯 보이지만, 인간의 삶과 가치를 그대로 반영할 뿐, 우리네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훈적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환상이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은유, 우화 정도로 읽힐 수 있다. 다른 공간에서 구축된 다른 세계관과 정서를 가진 서사가 현실의 관념과 큰 차이를 보일 때 환상은 아주 잘 만들어진 그럴듯한 것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걸작이다.

공간이 만드는 환상이 아주 손쉽고 간편한 것이라면 시간이 만든 환상은 매우 복잡하다. 시간이 만드는 대표적인 환상은 시간의 중첩이다. 보르헤스의 대부분의 서사는 시간의 중첩을 사용한다. 그의 소설에는 길게 늘어지는 죽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젊은 날과 현재가 기억과 상황 속에서 섞인다. 마르케스 역시, 긴 남미의 역사를 부엔디아 가문의 인물들에 녹였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환상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는 그들이 만들어낸 시간의 환상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시간의 중첩이라는 환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시간의 중첩은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시간이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환상인 시간의 중첩은 환상이 아니라 실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에서 그 실체는 환상으로 보인다. 이것은 실체가 환상이 되는 대단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은 상호 결합을 통하여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Time Machine, Back to the Future다. 되돌린 시간이 과거의 지점으로 현재의 실체를 이동시키면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에 기반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는 환상은 드라마 [궁], [철인 황후] 같은 통쾌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이 단순하게 따로따로 환상을 만들어내면 더 쉽게, 더 간단하게 섞임을 파악할 수 있지만, 시간과 공간은 서로 섞이는 경우가 많고 또, 그 섞임의 혼란에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더욱 파악이 쉽지 않다. 보르헤스 소설의 주인공 자아는 과거와 현재가 기억 속에서 통합된다.(소설 [픽션들] 속 단편 남부) 그래서 그의 소설은 난해해진다. 이런 시공간과 기억의 혼란에 자아의 감각과 심리가 포섭되면 소설은 더욱 난해해진다. 환상은 시간과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자아(주체)와 심리, 기억과 같은 것이 포함될 때, 더욱 커다란 환상을 만들어 내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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