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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May 28. 2022

[컬러의 힘] 캐런 할러

 칸딘스키의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읽으며 회화의 언어 중 하나인 색에 주목하게 되었고, 앙리 마티스를 비롯한 근대의 많은 화가들이 그들의 작업 언어인 색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고민을 진행했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컬러의 힘]은 미학/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심리학, ‘응용색채심리학’에 기반한 책이다. 색이 포함하고 있는 심리적인 속성과 그 속성들을 활용하여 현재 나와 주변을 어떻게 바꿔갈 수 있는지에 관한 진정 ‘응용(applied)’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은 다소 지엽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이 많아 애초 내가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의도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색채와 관련한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색의 확장과 다양성이라는 나름의 고민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컬러의 힘]에서는 세상의 모든 색을 4가지 유형으로(토널 배색 팔레트) 구분한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 찾기 같은 정신분석 상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칼라 군을 확정하고, 각각의 토널 배색 팔레트의 특징을 서술하고, 자신이 속한 색 군의 활용을 옷, 직장환경, 집 인테리어 등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지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응용색채심리학에서는 4가지 색 묶음을 제시하는데, (이 4가지 군은 Tonal Color Harmony 토널 색채 조화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색은 이 4가지 tone에 따라 비슷한 유형끼리 묶인다. 이는 고대 히포크라테스의 4채액설과 맞닿아 있고 칼 융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심지어 우리의 사상의학과도 닿는다. 과연 4는 무엇인가? 죽을 4? 혹시 우리는 4가 세상 운영의 원리인 신의 숫자이기 때문에 죽음과 연관시키며 피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컬러의 힘]에는 일본의 사례가 하나 나오는데, 과거 일본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파랑과 녹색을 구분하지 않았다. 책에 따르면 1921년 서양으로부터 크레용이 수입되면서부터 구분하여 부르기 시작했고, 그 혼란의 형태가 신호등의 녹색을 파랑으로 부르는 것 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의 이 사례는 우리와 매우 유사하다. 그럼 우리 역시 한동안 신호등의 초록을 파랑으로 부른 것은 일본 식민지의 영향인가? 아니면 우리 역시 같은 색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식민지 이전 사료를 뒤져 이 사실을 추적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색은 언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색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 색은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더욱 다양한 색을 생활에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다양해진다. 이것이 이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일지 모른다. 많은 가설과 이론들이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노력하고 과학과 기계가 감각과 행위의 지평을 늘이기 위하여 노력한다. 우주는 집짓기 게임처럼 암흑의 허공에 별이 생기고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 새로움은 과거의 것과 더불어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빨주노초파남보’ 각 원색의 틈에 존재하는 이름 없던 색에 구체적인 이름을 명명함으로써 색은 꽃이 되었다. 또 가시광선을 넘어 자외선, 적외선, X선등의 파장을 발견함으로써, 삶은 더욱 다양하게 변한다. 또 가상공간이 만들어짐으로써 우리의 삶은 더욱 복잡해졌다.  인간의 삶은 이 세상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다양성은 나는 알지 못하는 신이 끄는 수레의 지향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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