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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un 30. 2022

신화 만들기

[쿠스토스 카붐] 최우람 - 리움미술관 전시 작품

 ‘두 개의 우주가 존재하고 두 우주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으며, 이 통로를 지키는 수호신이 쿠스토스 카붐(라틴어로 구멍의 수호자)이다. 하지만 두 세계를 이어주던 통로는 인간들의 외면으로 점점 막혀버리고 쿠스토스 카붐은 죽어간다. 하지만 어느 곳, 어느 순간 통로의 연결이 복원되면 쿠스토스 카붐의 몸에서 유니코스라는 날개 달린 생맹체가 자라난다’ – 이것은 무선 가이드를 통해 전달되는 이 특이한 조작 작품에 부연된 설명이다. 작품은 하얀 모래 위에 쓰러져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듯한 기계 생명체 쿠스토스 카붐이 보이고, 그 위로 날개를 천천히 움직이는 (역시 기계 생명체인) 유니코스들이 유려한 날개 짓을 반복한다. 최우람 작가는 기계장치를 그의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정적인 조각에 동적인 움직임을 주었다. 기계장치들의 정교한 표현과 아름답게 다듬어진 금속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작가의 수고와 미적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이야기’다. 처음 나는 ‘쿠스토스 카붐’ 이야기를 듣고, 이것은 어느 곳, 어느 시대의 신화인지 찾아보려 애썼다. 영화 [토르]를 처음 봤을 당시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북유럽의 신화는 나로 하여금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읽게 만들었다. 하지만 쿠스토스 카붐의 신화를 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고대의 신화처럼 보이는 쿠스토스 카붐과 유니코스의 이야기는 최우람 작가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우람 작가의 탁월함이 존재한다. 단순히 조각품에 움직임을 주었다고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 존재와 관련된 스토리 속에서 조각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생명에 움직임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다.

 처음에 쿠스토스 카붐의 신화는 나를 당황시켰다. 나에게 신화는 집단의 창작이고,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시간적인 연속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스토스 카붐의 신화는 최우람 작가 한 사람에 의해 창작된 것이다. 어떻게 개인이 신화를 창작할 수 있을까? 며칠의 생각 끝에 다다른 것은 개인의 창작은 신화 탄생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우리의 단군신화 역시 고대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발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발화점에 무수히 많은 조각이 덧대어지고 전승되다가, 문자의 시대에 누군가에 의하여 기록되어 신화로 굳어졌을 것이다. 여기에 각기 다른 전승의 차이가 비교되고, 합리적인 상식이 개입하면서 수정되고, 개작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최우람 작가의 다른 작품들 역시, 이와 비슷한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아직 정보가 부족한 나는 작품 각각의 스토리가 거대한 신화 체계를 만들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러길 바랄 뿐이다.

 개인이나 집단에 의하여 신화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블과 DC의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세계관’속에서 주인공과 배경과 스토리는 완성된 체계를 이룬다. 1,2편 다음에는 과거로 돌아가 프리퀄을 만들기도 하고, 시리즈 속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고, 내레이션을 통해, 그들이 상정하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이런 기획이 성공한다면, 아주 먼 훗날 후대에 의하여 이것은 신화로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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