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T Jul 20. 2022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아직 이 시리즈는 완결되지 않고, 계속 리스트를 더하고 있다.)의 첫번째 책. 세계문학 전집을 기획하면서 민음사에서는 서양 문학의 근간으로서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제일 앞에 세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은 뚜렷한 거대 축을 이루고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일정 시기 동안은 어떤 한쪽이 다른 것을 압도하며 장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민음사의 기획자들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룬 [변신 이야기]가 그 시리즈의 첫번째가 되어야 함에 모두 동의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성경이 문학 전집에 포함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학보다는 종교적인 부분이 더욱 강하고, 독자들의 다른 종교적 성향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성경]이 시리즈의 첫번째나 두번째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굉장한 집단 지성의 결과물들이고, 서양사의 모든 국면에서, 또 일상에서 서양인들의(나중에는 세계인들의) 생각의 구조를 결정하고,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변신 이야기]의 원래 형식은 오비디우스 시대에 유행했던 운율을 갖춘 서사시의 형태라고 한다. 우리는 이윤기 님의 탁월한 번역으로, 여기저기에서, 특히 긴 연설과 독백등의 부분에서 시적인 느낌, 고대의 형식이 주는 꿀렁거림을 경험할 수 있다. 한편 [변신 이야기] 속 많은 이야기들은 오비디우스의 순수한 창작일까? 마지막 장 ‘카이사르의 승천’은 그의 창작인 듯하고, 그 전장 ‘아이네이아스’의 유랑과 모험은 선배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니네이스]의 영향인 듯하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 부분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참조 하였을 것이다. 그럼 그 이전의 이야기는? 아마도 그 스스로 그리스 전역의 신화와 설화들을 채집했을 수도 있고, 그의 시대에 어느정도 정리된 그리스 신화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책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이 산만하고, 흩어진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변신’이라는 주제로, 신들의 시대부터 아우구스투스 시대까지 꿰는 천재적인 탁월함을 보여준다. 우리가 주로 접하는 토마스 볼핀치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들의 연결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비디우스는 태고적부터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화자를 교묘하게 바꿔가며 계속 이어가며, 당대에 이르고 있다. 다소 연결고리간의 친밀도가 떨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인과 관계를 가지며 꿰진다. 

 굳이 오비디우스가 산만한 이야기를 꿰게 된 것은 당시의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잘보이고 싶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신 이야기]는 현재 지배자의 정당성을 역사에서 찾고, 가계를 신과 연결시키고 있는 전형적인 용비어천가이다. 아우구스투스의 가계는 시저를 통해, 로물루스로 거슬러 올라가고, 아이네이아스에게 이어지며, 이것은 베누스 여신과 결국은 세계의 지배자인 유피테르(제우스) 신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투스는 신이고, 그 이후 모든 로마의 황제는 신격화된다. 이것이 고대의 관념이다.

개인적으로 [변신 이야기]의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1권의 138페이지 ‘신들을 믿지 않은 펜테오스’는 종교와 합리(이성)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약간 술에 취한 듯한 박쿠스의 존재는 상황을 휘몰아, 광포하게 질주하는 폭풍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것은 술의 힘만은 아니고, 박쿠스교(디오니소스교), 즉 종교의 감상적인 파괴력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그것에 맞서 합리성으로 무장한(그의 연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펜테오스는 그 폭풍 같은 교도들의 폭주에 갈갈이 찢겨져 버린다. 이성과 합리는 질주하는 종교에 의하여 처참히 무너진다.

그리고 2권의 138 페이지(우연이다. 각 권의 같은 페이지에 나는 코멘트를 달아 놓았다). 여기에는 잠의 신 ‘솜누스’가 나온다. 많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은 개념을 신격화한 것들이다. 잠의 신은 잠을 방해 받고, 유노의 부탁을 전하는 이리스 여신을 만난다. 솜누스는 그 순간만큼 잠을 자지 못한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잠의 여신은 잠을 자야하고, 이것저것 부탁을 들어주며, 깨어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녀는 잠을 담당하는 신일 뿐이다. 그러면 잠의 신이라고해서 졸리는 듯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나는 여기서 길을 잃었다.

작가의 이전글 신화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