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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Aug 04. 2022

상호 주체적 관계

 비밀 사내 연애를 하는 남녀는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들의 연애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그들의 비밀스러운 수작은 만인에게 즐거움을 준다. 저 연차 시절 나의 자신감 있는 주장은 선임들에게 비웃음이 되었다. 목적을 담고 있는 자기만족의 논리적 주장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의도의 전달이 개인에 의하여 기획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연구를 발표할 때, 발표자는 전략적으로 청중들이 ‘자신이 아는 것만큼 알고 있지 못하다’고 가정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전략적 기만은(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발표자에게 내용 외적인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청중에게는 긍정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정적인 사례도 있다. 최근 언론에서 만드는 어젠다와 뉴스를 읽다 보면 언론이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강하게 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뜬금포에는 더러운 의도가 보이고, 중립과 애국을 강조하는 그들의 뉴스에는 속 보이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언론이 만들어 내는 기표들은 점점 투명해지고, 나는 그의 꼬롬한 의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되었다. 

 욕망을 지향하는 인간에게 ‘易地思之’, ‘상호 주체적 관계에 대한 인정’은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는 환상일지 모른다. 모든 관계에 있어 최초의 관계는 상호 주체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욕망의 강도와 자아의 다름에 의하여 흐름이 생기고, 그 속에서 힘이 태어나고 점점 이 힘은 폭력으로 전환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고 전제하는 민주주의 시대의 도덕이고 정의다. 

 왜 타자는 점점 투명해지는가? 그리고 젊을 때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모습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드러나는 것은 왜일까? 똑똑해진 걸까? 삶은 타자와의 관계다. 우리는 삶의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타자를 만나고, 타자의 영향과 인정을 받고, 타자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 고통의 시간은 켜켜이 나를 채워온다. 실패와 좌절, 고통의 시간은 나를 침잠하게 만들고, 몸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내 속에 그림자의 농도가 짙어지고 검어질수록 상대는 더욱 밝아지고 투명해진다. 이것이 나이가 주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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