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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an 04. 2023

해적은 비탈에 산다.

알란야와 테투안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는 해적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또 선원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해적들의 도시에 들어선다. 바다에 면해 있는 해적의 마을은 산비탈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빛을 발하고 높은 산의 중턱에 형성되어 있다. 천천히 들어서는 ‘블랙펄 호’ 너머로 마치 반짝이는 보석 같은 아름다운 도시의 밤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해적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게걸스럽게 먹고, 여자들을 희롱하며,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운다. 이러한 광경이 영화 속에 나타난 전형적인 해적 마을의 모습이다.

 얼마 전 모로코 북부 테투안을 방문할 때 어디서 본듯한 데자뷔 같은 인상을 받았다. 수량이 많이 줄어든 강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파도치는 도로 앞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시는 산비탈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 투르키예의 남부 도시 ‘알란야’를 찾아갈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알란야 역시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도로를 이리저리 굽어 지나가다 보면 절벽의 단애가 보이고 그 앞으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해적선이 하나 알란야 앞바다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알란야는 토러스 산맥의 남쪽 비탈에 자리 잡은 도시로, 초기 로마시대 해적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로마의 변방에서 지중해의 상권을 위협하는 알란야 해적의 존재는 골칫거리였고, 로마는 당시 최고의 장수 폼페이우스를 파견하고, 알란야는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된다. 그리고 비로소 동쪽 지중해의 패권이 로마의 손에 온전히 넘어가게 되고, 여기서 이름을 얻은 폼페이우스는 중앙 정치에서 패권을 쥘 수 있었다. 

 테투안 역시 해적들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다. 테투안은 바다를 바로 접하지는 않지만 도시 앞을 흐르는 강을 통해 쉽게 바다로 나가고 들어올 수 있었다. 알란야보다는 좀 더 안전하게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테투안은 북쪽 아틀라스 산맥의 끝에 위치하며 뒤로는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아틀라스를 배후로 가지고 있다. 이곳은 스페인의 고토 안달루스를 그리워하는 여자 해적 ‘사이다 알 훌라’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렇게 공교롭게도 내가 방문한 두 해적의 도시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비탈에 형성되어 있다. 해상을 통한 적의 침입을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는 이점과 교전 시 위쪽 점유로 인한 방어적인 우수성도 고려하였을 것이고, 또 유사시 산을 넘어 도망갈 수 있는 퇴로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해적은 대대로 비탈에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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