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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un 26. 2023

표절

그리스 이후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변주라는 속설이 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1번과 2번만 있으면 후대의 모든 관현악 곡들을 만들 수 있다는 속설이 음악에는 존재한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3인방(다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의 영향은 美術史를 압도한다. 오죽했으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라파엘 전파’(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이고자 했다. 또, 다양한 플라톤의 변주 속에서 칸트와 헤겔의 생각과 방법은 그 이후의 철학사에서 그 권위를 빌리고자 하는 이들에 의하여 인용되며 더욱 풍성하게 확장되었다. 칸트와 헤겔의 철학은 거대한 플라톤의 변주 속에서 단단하게 맺어진 중간 매듭인 듯하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유명 미술평론가의 미술사조의 영향 관계를 밝힌 도표로 시작하는데…,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호, 고갱 그리고 세잔은 그 이후 표현주의/야수파/입체파와 같은 중요한 많은 시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3명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역시 미술사에서 중요한 중간 매듭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플라톤, 바흐, 피렌체 3인방의 개척자 같은 모습은 매우 영웅적으로 보인다.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영역에서 위대한 체계를 세웠던 그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대한 것은 그의 몇몇 작품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그가 수행한 인체 비례에 대한 탐구 또 각종 장기의 모습과 기능을 탐구하고자 했던 해부학에 기인한 바 크다. 그들의 영웅적인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도약 이후, 지지부진한 평행선으로 이어지던 그 기간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지지부진한 과정은 그 이후의 위대한 매듭을 위한 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 회화의 기이함은 그들 선배의 그림보다 못 그린 그림, 수준 떨어지는 그림으로 평가절하되었지만 그런 변형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 인상파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음악에서 표절의 의미도 다시 살펴야 한다. 표절이 ‘단순한/손쉬운 차용’이라면 문제지만, 치열한 고민 속에서 나오는 유사성이라면…, 우리는 횡보하는 평행선의 울림에도 공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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