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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ul 31. 2023

[신곡] 단테 알리게이리

[신곡]과 화가들

인상파에 의한 미술의 독립운동이 시작되기 전, 미술은 서사(문학)의 오랜 지배 아래 있었다. 미술은 성경, 신화(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 역사의 무게에서 벋어날 수 없었고, 1300년대 단테의 [신곡]은 화가들의 발에 서사의 쇠고랑을 다시 단단히 채웠다. 이렇게 문학의 시녀가 된 회화는 모네가 아침 해를 새롭게 볼 때까지 다시 근 500년 동안 주인에 봉사했고, 주인의 권위와 신화를 만들고 퍼트려 왔다.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경우는 책에 대한 삽화 작업일 것이다.

[신곡]의 삽화 작업은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 산드로 보티첼리, 영국의 독특한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 무의식을 그린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유명화가들에 의하여 시대를 관통하여 진행되었다. 작은 술통 보티첼리는 말년에 자신의 기존 작품을 부정하고, 신곡을 다시 읽으며 경건한 가톨릭의 세계로 들어선다. 지성이 강조되던 시기, 보티첼리의 삽화는 좀 더 도식적인 형태를 보여주는데,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의 커다란 구조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즐겨 읽었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그림은 스티브 잡스만큼 독특하다. 환상을 담은 블레이크의 옅고 짙은 색조와 처참한 지옥의 표현은 [신곡]만큼 큰 울림으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보티첼리가 사보나롤라를 만나면서 [신곡]의 삽화를 그릴 생각을 했다면, 달리는 교황 비오 12세를 만난 후, 마음에 큰 변화를 겪은 듯하고, 구도자의 마음으로 [신곡]의 삽화 작업을 시작한 듯 보인다. 살바도르 달리의 삽화는 늘어지고, 그로테스크한 그만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각 곡의 삽화에도 반영하고 있다. 이 3인의 삽화가에게 [신곡]은 구도의 도구였고, 이들은 신곡을 읽으면서 인생의 의미와 그들의 신과 조우했다. 이런 맥락에서 신곡은 성경을 해설하는 참고서의 느낌을 주며, 도를 찾아 나선 많은 구도자들의, 부처가 되고자 했던 많은 불자들의 어둑어둑한 동굴의 유일한 장식이었으며 등불이었다. 구도자들의 [신곡] 다시 읽기는 단테의 여정 자체가 구도자의 길이라는 측면에서 나란한 병치의 울림을 가진다.

삽화는 아니지만 단편의 형태로 단테의 길을 동경하고, 따르고자 했던 작가들도 있는데, [신곡]의 희망 없는 지옥의 문을 조각한 로댕, 로댕은 조각가의 언어로 그의 작품 [지옥의 문]에 단테의 서사를 함축하고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문을 통과한 이후에 펼쳐지는 몇몇 죄악의 처참한, 피 할 수 없는 형벌을 청동의 문에 함축하고 있다. 로댕은 [신곡] 전체에서 풍기는 단테의 이성과 지성에 대한 상징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지옥의 문 위에 배치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생각하는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지옥의 문에 있을까? 하는 대답이 [신곡] 읽기를 통해 해결되는 부분이었다. 로댕과 끌로델 관계의 부도덕함/ 부절제가 그로 하여금 [지옥의 문] 작업을 이끌었다면,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은 구도(求道)라기보다는 변명, 후회와 참회에 가깝다. 이런 후회와 참회의 [신곡]은 19세기 영국 화가 ‘단테 가르비엘 로세티’에게서도 나타난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단테를 너무나 좋아했던 그였지만, 그의 개인적인 삶은, 단테가 경계한 ‘절제하지 못한 애욕’에 젖어 있었다. 아마 그의 영혼은 지금도 애욕 지옥의 바람 속에 광포하게 휘둘리고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달에 대한 가혹함, 제인 모리스에 대한 연정으로 그는 파괴되었고, 그의 그림은 그런 자신에 대한 변명과 후회, 더 나아가 참회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잘 알려진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도 [신곡]의 장면을 그렸는데, 비교적 초창기에 그려진 [단테의 배]는 향후 터질듯한 근육과 격정, 비참함으로 자신의 그림에 꿈틀거림을 집어넣으려 했던 그의 낭만주의적 형식을 완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이외에도 [신곡]의 명성 아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읽기를 표현하고,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신곡]은 미적 작업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었고 또, 예술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방향을 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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