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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Aug 01. 2023

[신곡]과 호피무늬

그 현란함과 과함에도 불구하고 호피무늬는 시대를 초월하여 여성복 시장에서 꾸준히 만들어지는 직물패턴이다. 전면 호피무늬로 된 재킷과 판타롱도 있고 작은 액세서리에도 호피무늬는 두루 적용된다. [신곡]에는 호피무늬에 대한 서양 신화의 오래된 상징이 등장한다.

단테는 지옥편 1곡에서 방향을 잃고 어둑한 숲을 헤매다가 표범, 사자, 암늑대를 만난다. 해설에 의하면 세 마리의 맹수는 각각 음란, 오만, 탐욕을 상징한다고 한다. 상징이 대상의 속성에서 나온다는 단순한 논리로 봤을 때 ‘암늑대=탐욕’은 매우 합당해 보이고 ‘사자=오만’은 그럭저럭 받아들일만하다. 하지만 동양인인 나의 관점에서 ‘표범=음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하지만 ‘표범=음란’의 상징은 서양 신화 속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는 환각과 쾌락의 상징을 가지는데, 그는 항상 포도 덩굴과 표범과 같이 등장한다. 그의 행렬은 술 취한 사람들의 너저분하고 시끄러운 난장 같은 모습으로 작품 속에 묘사된다.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는 아디아드네를 만나는 디오니소스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고,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표범으로 디오니소스를 묘사했다. 고대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퇴폐적이며 잔인한 광란의 현장이었다고 전한다.

원래 호피무늬는 호랑이 문양이 아니라 표범의 것이다. 표범이 호랑이가 된 것은 시간과 문화권에 따라 변형된 결과인 듯 보이며 오늘날 호피무늬는 음란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능’의 상징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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