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T Aug 08. 2023

[신곡], 연옥-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축하드립니다. 합격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희들이 원하는 재능에 약간 못 미치는군요. 인턴으로 좀 더 업무를 익히고 기술을 배워 재능이 좀 더 오르면 그때 정직원으로 채용하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정직원이 되는 건가요?” “그건 OO님의 노력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이건 또 다른 지옥이었다.


연옥은 희망 고문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과거 번역가는 Purgatorio를 단순한 중간단계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지옥 獄을 달아 煉獄이라 명명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탈 燃’을 쓰기도 하고 ‘달굴 煉’을 쓰기도 하는데, 주체(인간)에게 노력이 요구된다는 면에서 ‘달굴 煉’이 더 적합해 보인다. [신곡] 연옥 편 27곡에서 단순 순례자임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연옥의 불 속으로 들어간다. 천국에 이르기 전 남아있을지 모르는 조그만 죄라도 태워 없애기 위함이다. 물로 이루어지는 세례 역시 정화 의식이지만, 불로 이루어지는 정화는 사후세계에서 이루어지기에 더 완벽하고, 더 깨끗하다. 불은 과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이후 완벽한 정화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지옥은 희망이 없는 영원한 고통의 시궁창이지만, 연옥은 정화를 통해 천국으로 상승할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곳의 문제는 기간과 단련의 농도에 있다. 연옥 편 21곡에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의 음유시인 스타티우스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그는 연옥에 떨어져 힘든 정화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하늘의 은총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는 예시로 등장한다. 그는  정화작업을 1200년 동안 이행한 후에 비로소 정직원이 될 자격을 부여받았다. ([신곡]에서는 4백 년, 5백 년 정도로 이야기하지만, 그의 생몰 연대와 단테의 여행 시기를 볼 때 약 1200년 정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이 기약 없고 긴 은총의 시간은 연옥민들에게 삐뚤어질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또, 연옥에서 보이는 죄의 정화 방법이 지옥의 지독한 벌보다 훨씬 가벼워 보이지만, 지옥을 경험하지 못한 연옥 초심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연옥은 정치적인 발명품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사후세계의 체계를 논할 때, 연옥을 설정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연옥은 면죄부처럼, 자연스럽게 교회의 체계 안에 들어왔을 것이다. ‘대놓고 나쁜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적당히 나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장치로(특히 왕과 귀족을 위한)  연옥 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기회를 한번 더 준다’는 매우 인본주의적 관점은 사실 고도의 정치 부산물이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이 현실에서 간곡하게 염원하고 기도하면, 연옥에서의 정화작업 기간이 단축된다는 설정은 교회가 효과적으로 후손(현재의 사람들)들을 묶어놓을 수 있는 부수적인 목적에도 봉사하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신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