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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Aug 14. 2023

[신곡],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의지

‘봄(見)’은 단테가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방식이다. 또 이것은 베아트리체와 하느님이 의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유명한 시인인 단테에게 사후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세상을 계도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식인 단테는 [신곡]에서 논증과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이성과 지성을 상징한다. 이해와 논증은 베아트리체에 의해 또 중세 스콜라 철학의 단단한 체계를 쌓았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직접 설명된다. 여행 중 단테에게서 생겨나는 의심과 질문,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 영혼의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포섭한 신학, 스콜라 철학의 기반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성에 의한 논증의 의도는 천국의 고위층(토마스 아퀴나스, 베아트리체, 세 사도와 아담)에 의해 ‘의심’으로 반박당한다. 천국 편 시작 부분에서 펼쳐지는 베아트리체의 비판(어쩌면 비난일 수 있는)과 교정의 명령은 가스라이팅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지성 및 이성의 한계는 단테의 ‘묘사할 수 없음에 대한 양해의 표현들’과 새로운 신학적 영역으로의 이행을 통해 극복된다. 단테의 의심으로 대표되는 ‘철학’은 천국 편에서 비로소 신학의 영역으로 도약한다. 믿음을 대표하는 베드로, 소망을 대표하는 야고보 또 사랑 그 자체인 사도 요한과의 문답을 통해 단테의 의심은 녹아 버리고 진정한 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신학의 세계는 의지의 세계다. ‘봄’은 그저 멍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이 포함된 분석, 비판 그리고 이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 봄은 조물주를 향하는 방향성을 갖는데, 이때 방향성은 어느 정도 힘을 포함하는 의지가 되는 것이고, 조물주를 향하므로 이 의지는 善에 대한 의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창조한 그 권위에 의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는 평가받고,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믿음 역시 의지이며, 소망은 의지를 추진하는 목표를 강조한 개념이고 사랑은 그 자체가 의지다. 그러므로 신학의 중요한 세 개념은 하나로 모아지는 데, 그것은 바로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당위로 받아들여진 의지의 방향성을 다시 지성/이성으로 의심하고 덤벼드는 인물이 니체가 아닐까? 암튼 [신곡]에서 의심으로 대표되는 지성은 믿음/소망/사랑의 신학적인 의지에 복속되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볼 수 없을 정도) 빛으로 대표되는 창조주를 알현하며 끝을 맺는다.

지옥에서의 봄(見)은 매우 명확하다. 연옥에서의 봄 역시 비록 안개에 싸인 듯 하지만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천국에서의 봄은 넘치는 빛에 의해 계속 방해를 받는다. 이런 볼 수 없는 상태는 천국의 위계를 올라갈수록 점점 개선되지만, 이때의 봄은 논증과 이해를 위한 봄이 아니라 신학적인 마음의 봄, 모아진 의지에 의한 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 편의 명확함을 빛의 세상, 천국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옥-연옥-천국으로 이어지며 지성과 이성은 명확함-안개-빛으로 이행한다. 천국의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할수록 지성과 이성의 눈은 쓸모 없어지고, 절대정신이 개별 대상에 부여했던 작은 빛을 하느님의 빛(원동천의 빛)과 align 하며 점점 의 세계로 포섭된다. 천국에서 단테의 눈은 서서히 적응해 가며, 세멜레를 태워버렸던 그 광포한 빛, 전지전능한  빛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곡]에서 천국은 빛의 향연이다. 영혼을 담고 있는 빛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 밤하늘의 화려한 ‘드론 쇼’를 연상시킨다. 빛의 영혼은 왕관의 회오리를 만들고, 십자가와 독수리의 형상으로 조합되기도 하며, 찬송의 글귀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현란한 빛의 잔치 속에서 단테는 세속의 지식을 벗고, 구원과 확신의 천국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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