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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Sep 11. 2023

[모비딕] 허먼 멜빌 2.

일화에 따르면 [모비딕]은 초창기 책방에서 ‘수산학’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고래의 분류를 시작으로 각 기관에 대한 상세한 설명(심지어 골상학적으로도 다룬다)을 담고 있고, 포경업의 역사, 유명한 고래 이야기, 포획과정, 포획에 동원되는 각각의 장비에 대한 설명, 해체과정과, 기름 정제 과정 등 고래와 고래잡이와 관련한 매우 사실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 작가의 경험에 기반하기에 더욱 상세하고, 자세하며 친절하다. 하지만 이런 FACT에 기반한 실제 설명이 소설의 재미와 소설로서의 가치를 전혀 떨어트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허먼 멜빌만의 서술방식이 있고, FACT에서 언뜻언뜻 느껴지는 사회적, 역사적인 분석과 화자(작가)의 자긍심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의 무수한 가지를 가진 긴 소설, [모비딕]은 마치 수없이 많은 작살을 몸에 달고 유유히 남양의 바다를 지배하는 모비딕을 닮았다. 

[모비딕]은 작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 사실 스토리 라인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곁에 붙은 작살의 사연과 설명은 다채롭고, 시간적으로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시대를 포함하고, 장소적으로는 지구의 모든 대양을 포괄한다. 포경업과 고래에 대해 설명하는 장 하나하나가 어떤 경우 매우 극적인 단편을 구성하기도 한다. [모비딕]은 백 개가 넘는 단편으로 구성된 장편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제42장 ‘고래의 흰색’은 압권이다. 흰색이 주는 고귀함과 종교적 순수의 예시들을 나열하면서 시작하지만, 흰색에 공포와 잔인함이 스며드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하면서 공포를 환기시킨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밤의 색, 즉 검은색이 인간의 마음에 공포를 심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흰색이 주는 공포는 검은색이 일으키는 그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공포의 농도는 더 진하고 지독하다. 왜냐하면 흰색은 많은 경우 종교와 결합되어 있어서 더 큰 불안과 무서움을 자극한다. KKK단의 뒤집어쓴 흰색 복면이 알카에다의 검은 복면보다 더 섬뜩하고, 사자들이 임팔라의 내장을 뒤지는 것보다, 물범의 붉은 피가 입가에 묻어있는 설원의 북극곰이 몇 배는 섬뜩해 보인다. 허먼 멜빌은 모비딕의 지능과 교활함에 덧붙여, 모비딕의 흰색이 고래잡이에게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세세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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