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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Sep 19. 2023

영감

영감(靈感)은 두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이란 네이버 국어사전의 두 번째 정의를 대상으로 한다. 보통 영감은 스치는 것이고 또,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표현이 그렇다. - ‘스치는 영감’ ‘영감이 떠오른다’ – 머리 위를 선회하며, 이리저리 떠돌던 영감은 어떤 순간, 어떤 계기를 통해 나의 머리를 때린다. 그 만남의 순간은 보통 ‘번쩍임’으로 표현되는데, 시간 정지, 아래턱의 열림, 동공의 확장 그리고 나의 머리모양 뒤로 그려지는 번개 모양으로 만화 속에 이미지화되었다. 이것은 날아다니는 영감이 포착되는 순간에 대한 묘사다. 그래서 영감의 한 종류는 새처럼 하늘을 날고, 언제나 하강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노려보는 독수리의 형태를 띤다. 

한편, ‘떠오르는 영감’이라는 표현에는 영감의 거처로 무의식의 바다를 상정하고 있다. 역시 어떤 계기와 자극으로 바다는 흔들리고 끓어오른다. 그러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내며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서서히 떠오르는 영감은 찰나적이며 휘발성이 강한 하늘의 영감보다 더 뭉근하고 지속적인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그것을 좀 더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다의 영감은 조금 더 치명적이어서 우리를 휘감아 오래도록 정신의 혼수상태에 머물게 할 때도 있다. 나의 발을 타고 위로 오르는 스멀스멀한 영감은 나를 먹어버리는 포악함을 보이며, 공포를 남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마치 영감은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체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우리는 또 이런 표현도 쓴다. - 00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00은 XX에게 영감을 주었다. – 단순 객체로만 표현한다면 이런 표현들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영감을 생산하는 주체의 문제다. 우리 모두는 영감 생산의 주체이며 객체다.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영감은 하늘에 쏘아지기도 하고, 우리의 발밑에 지뢰처럼 놓여있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나 그 화살을 맞을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그 지뢰를 밟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감은 나에게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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