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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Oct 01. 2023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동서문화사 [죽은 혼/외투/코/광인일기]를 읽고

 눈이 압권이었다. 금방 눈물이 쏟아질 듯 슬픔이 짙게 배인 눈에 들어앉은 원망과 공포가 인상적이었다. 전작 속 이반 뇌제의 눈과 비슷하지만, 약간 위를 향하도록 처리된 시선에서 당시 선생님이 품고 있던 자포자기의 심정과 원망이 잘 드러났다. 몇 년 전 화가 레핀(일리야 레핀)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죽은 혼] 2부 원고를 태울 당시에 대해 들려달라고 했다. 시간의 미화 작용으로 에피소드의 사이사이를 메우던 감정은 이제 말라버렸다. 하지만 마을 회관에 전시된 그의 그림을 접하고 다시금 당시의 상황이 온전히 까발려진 듯했다. 레핀은 나의 담백한 이야기에 당시의 생생한 감정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동지가 지난 겨울밤이었다. 선생님의 잠자리를 봐드리기 위해 선생님의 방을 향했을 때, 희미한 빼치카의 속 불의 일렁임과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선생님의 손에는 두꺼운 원고가 들려있었고, 눈물과 같이 그 원고를 빼치카에 던져 넣고 있었다. 먼저 던져 넣은 페이지들이 검은 그을음으로 빼치카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나 역시 울며 선생님을 말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선생님의 뿌리치는 앙상한 팔은 마치 그의 것이 아닌 듯 광포하게 나의 접근을 막았다. 기어이 모든 원고를 던져 넣은 선생님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몇 년 전 로마에서도 [죽은 혼]의 원고를 태운 적이 있었다. 당시는 슬픔보다는 화가 더 짙었다. 자신의 생각 속에 글들이 맴돌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풀어낼 수 없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 강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자포자기를 넘은 자학과 슬픔의 감정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혐오와 신에 대한 원망의 복합적인 감정이 선생님의 마음에 강한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문하생으로 들어가던 날, 선생님은 [신곡] 같은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푸쉬킨과 주코프스키가 주도하던 러시아 문학계에서 [신곡]은 ‘문학적 성경’으로 인식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당시 시인이라면 누구나 [신곡]의 정교하고 위대한 운율과 내용의 방대함을 닮고자 했다. 어떤 연회에서 푸쉬킨은 선생님에게 러시아 판 ‘신곡’을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더욱이 친절한 푸쉬킨은 선생님의 탁월한 서사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 사교/ 문학계에서 푸쉬킨은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그의 평가와 비평은 절대적이었고, 그의 제안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의무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사실 선생님과 푸쉬킨 간에는 신분의 차이로 인한 미묘한 벽이 있었다. 비록 푸쉬킨이 공개적으로 선생님을 추켜세웠고, 비평문단에서도 선생님에 대해 긍정적인 평을 쏟아놓긴 했지만, 선생님과 문단사이에는 이에 모래가 낀 듯 서걱거림이 느껴졌다. 선생님도 이러한 삐걱거림을 [죽은 혼] 1부 7장 도입부에서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보기에 선생님에 대한 푸쉬킨의 인정은 선생님의 소설이 담고 있는 현실 비판과 최고위 귀족 푸쉬킨이 결코 알 수 없는 저급한 인생의 저급한 삶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있었다. 선생님은 그러한 푸쉬킨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한가한 사랑과 심리를 멋진 운율 속에 담는 푸쉬킨에게는 없는 부분을 선생님의 소설은 담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 역시 다소 비겁했다. 선생님의 세속적 욕망에 푸쉬킨은 절대로 필요한 존재였다. 당시 푸쉬킨의 보증은 러시아 문학계의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회원증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은 푸쉬킨 류의 서정성과 지루한 감정서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푸쉬킨이 극찬했던 관료체제와 현실비판에도 큰 관심은 없었다. 비록 선생님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간까 근교마을에서의 야회], [외투], [코] 그리고 [감찰관] 같은 작품이지만, 내가 알기로 선생은 [죽은 혼]에 대한 강한 집착과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의 일상을 옆에서 지켜본 바, 선생님은 보다 종교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다. 농노제도, 관리의 허세, 지주들의 욕심은 아무래도 좋았다. 비록 ‘죽은 혼’이 ‘죽은 농노’를 의미하는 이중적인 제목을 붙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언어적인 유희에 불과할 뿐, 선생님의 관심은 늘 ‘영혼’에 있었다. 선생님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어머님의 영향이 크고, 대대로 연을 이어온 마트베이 신부의 영향이 크다. 마트베이 신부를 만나고 난 후면 선생님은 우울에 빠져들었다. 2부 원고를 태웠던 때도 마트베이 신부의 방문을 받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

마트베이 신부는 선생님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온화한 풍모와는 달리 그는 늘 선생님을 구석으로 몰았다. 그리고 회개를 강요했다. 그는 선생님의 창조물들을 부정했다. 치치코프도, 흘레스타코프도 그는 악령에 씌었다고 비난했다. 선생님은 마트베이 신부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고, 깊은 회의와 슬픔에 젖었다. 선생님은 그 자신이 치치코프나 흘레스타코프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호도하고 타인을 속이는 자신, 점점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그의 모든 작품들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더욱 [죽은 혼]의 집필에 매달렸다. 지옥으로 설정한 1부는 쉽게 쓰일 수 있었다. 1부는 선생님의 전작과 비슷한 스타일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부부터가 문제였다. 가끔 선생님이 한탄하듯, 알게 모르게 선생님의 오랫동안 길러진 쓰기 근육은 째서 벌리는 쪽으로 발달되었다. 그 속에 성수를 붓고, 정화 작업을 하기엔 다소 부족했다. 정화를 건너뛰고 천국으로 갈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몇 년에 걸쳐 2부를 완성하고 태워버렸다. 선생님의 영혼은 점점 슬픔에 젖었고, 원망을 넘어 자포자기의 상태로 넘어갔다. 그렇게 선생님은 곡기를 끊었다. 어쩌면 단식은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영혼에 대한 정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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