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3
이런저런 생각이 거품처럼 끓어오른다. 문장 속 개념들은 인식을 타고 서로 부딪혀 끈적한 열기로 변하고, 이것이 기존 생각(선입견)과 반응하며 미끌미끌한 거품을 만든다. 시간은 거품을 잡아 두기에는 찰라고, 개념은 다른 개념으로, 의미는 다른 의미로 미끄러지며 전장을 바꿔가며 싸운다. 그래서 읽기는 멈춰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기를 강행한다면, 독자는 세세한 의미를 놓치게 되고 결국엔 읽기 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앙상한 이야기의 뼈대에 식상함의 살만 붙이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자’ 일뿐이게 된다. 이것이 읽기의 위험이다.
자! 이제 책을 두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방법을 독서에도 적용하자. 관조의 빛으로 거품을 바라보자. 맑고 순수한 인식으로 떠 오르는 표상을 보자! 그리고 그 표상들의 흐름과 뭉침과 연결을 바라보자. 그 관조 속에 무엇이 보이는가? 어떤 힘이 느껴지는가? 실체가 아닌 것(거품, 생각)에서도 ‘의지’가 느껴지는가? 관조의 시선에 맥이 빠진 표상과 개념들의 밑을 흐르는 의지가 느껴지는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생각이 나의 읽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거품 하나하나가 담고 있던 약간의 열기(힘)가 나의 읽기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갔다. 그래서 나는 탈진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나는 일정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다시 책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