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연구는 철저히 사료에 근거해야 한다.’ –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에만 의지하려는 이런 학문연구의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고 정당해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대하는 뉴라이트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의 근대사에 대한 인식은 민족에도 근거하지 못하는 저급한 종족우선주의에 불과한 매우 비합리적인/ 매우 감정적인 인식일 뿐이다. 자신들은 학문 연구의 대 전제인 철저한 사료의 바탕 위에 세워진 실증적이며 객관적인, (학자라면 응당히 갖추어야 할 태도인)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합리적인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고고히 내려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속으로는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의 옳음을 확신한다.
하지만 학문이 DATA에만, 역사가 사료에만 기인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일반적인 미덕은 파기되어야 한다. 자신의 학문이 FACT에 근거한다는 생각은 매우 교만하다. 자료의 다양함과 광범위성은 차치하더라도, 주관의 굽음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JTBC뉴스에는 ‘FACT 체크’라는 별도의 코너가 있다. 하지만 이는 JTBC의 관점에 대한 부연(Supplement) 일뿐이다. ‘어젠다 세팅’의 정치적인 의미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FACT라는 용어를 끌어들여 그들의 목적을 부연할 뿐이다.
FACT는 권위가 되었고, FACT의 탑은 알맹이(본질)를 위해 쌓아진다. 이미 진실의 현현 가능성은(알맹이가 있기는 한 건가?) 희뿌연 안갯속에서 물방울로 사라진 요즘, 해체가 아니라 다시 본질을 찾아가는 시도가 DATA, FACT, 사료의 담론에 담겨있다. 더욱 짙어지는 안갯속에서 본질을 뭉치는 사람들은 분명 특정한 정치적인 의도를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뭉친 본질은 다시 차이를 만들고 안갯속에 물방울로 해체되어 더욱 짙은 안개를 만들 것이다. 역사는(본질은) 이렇게 의도와 해석 속에서 비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