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염료는 실제 자연에서 매우 구하기 어려운 색이라고 한다. 푸른 하늘과 그것의 반사인 맑은 호수와 바다가 지구에서 그렇게 많은 면적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을 우리 주변의 자연에서 찾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파란색의 재료인 청금석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성인이나 성모의 옷 정도에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중세까지도 이 청금석은 황금에 버금가는 보석으로 취급받았고, 그 생산은 아프가니스탄 지방에 국한되었다.
파란색은 지배적인 상징인 하늘과 연결되어 성스러움, 경건, 순수, 희망의 의미와 연결된다. 현재 중국의 신장위구르 쿠차에 있는 키질석굴에는 파란색의 동굴벽화들이 남아있다. 실크로드의 도시로 동과 서에서 오는 침략자들의 폭압에서 부처의 청아한 세계에 닿으려는 쿠차 사람들의 염원이 이 동굴의 벽화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무슬림으로 변모한 이 지역 위구르인들은 지금도 자신의 집과 대문을 푸른색으로 칠하는 전통이 남아있다.
만약 당신이 모로코의 쉐프샤우엔에 간다면 눈이 멀 것 같은 파란색의 폭주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로코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하늘색 푸른색을 칠한 문과 벽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전통이었다. 유대인들이 자기의 집 대문을 푸른색으로 칠했고, 주변의 현지인들이 그것을 따라 하면서 숨 막힐 것 같은 푸른색 마을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푸른색은 모기나 벌레들이 기피하는 색깔로 푸른색으로 칠한 집에는 벌레가 적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파란색 칠하기가 주변으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파란색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순수와 희망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파랑은 하늘과 연결되어 희망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파랑을 통해 신과 닿으려 했고, 파란색을 칠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마음속에 잡아 왔다. 파랑새는 이런 희망의 상징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파란색을 집중하여 자꾸 보고 있으면 눈이 시리고,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두바이 갤러리아 아파트의 통 창에서 바라보던 쨍한 하늘이 반사된 푸른 바다는 우울의 심연으로 바라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이렇게 파란색은 희망이지만 우울과도 닿아있다. 달뜬 희망의 지속은 우울의 심연과 이어진다. 파란색은 희망이지만, 우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