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슬 민나(Minnah O lord)
이번엔 우주다.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이 지구의 재탄생에 관한 것이라면 ‘옥구슬 민나’는 우주의 창조에 관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거대 서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장편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수많은 세부와 복합적인 다층이 누락되고, 과감한 건너뜀과 생략이 가능한 단편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예민한 떨림으로 묘사에 살아있다.
‘젊은 작가상 작품집’의 마지막에 실린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을 읽으며, 보르헤스의 [픽션들]과의 유비를 떠올렸다. 나는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환상의 틀을 쓴 거대한 서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의미와 두꺼운 안개처럼 뭉쳐 도무지 헤어나기 힘든 복잡한 서사의 흐름. 한동안 그녀에게 잡혀 살게 될 것 같다.
‘민나’는 그녀의 전작(?/ ‘옥구슬 민나’는 ‘한 방울의 내가’보다는 후에,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과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다)에서 묘사한 ‘혼’ 혹은 ‘온’과 같은 핵이며 중심이다. 그리고 민나는 신(神)이다. 민나는 이동하며 작아지고, 작아지며 그 수량은 늘어나고(에너지 불변의 법칙) 시공을 응시하며 빅뱅으로 터지고, 우주의 모든 것에 편재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에 민나가 존재하게 된 이유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민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은 형식적인 순환을 넘어 의미적으로도 순환한다. ‘민나는 민나의 어머니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도입의 선언은 마지막에 민나가 각각의 인간(득)에 편재하고, 시공을 관통하는 그들의 숭배에 의하여 득(인간)은 민나를 다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의 감정은 차분히 흐르는 듯하지만 팽팽히 당겨진 사미센 줄처럼(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 슬프고, 위태롭고, 무섭기조차 하다.
‘옥구슬 민나’는 ‘우주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 무슨 득이 되는가?’라는 화두로 시작한다. 과연 나는 창조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한방 세차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야기의 중간에 새의 불평으로 ‘득’은 ‘독(毒)’으로 의심된다. 여기엔 새를 치료하는 자비로운 신의 모습뿐 아니라, 세상에 ‘독’을 뿌리는 자비와 파괴의 이중적인 모습의 신으로 묘사된다. 그럼 ‘득’은 무엇일까? 소설 속에서 ‘득’이 무엇인지 설명하려 하지만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이것은 득과 민나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순환의 구조가 이곳에서 나온다. 즉, 민나=득=민나인 것이다. 여기서 득은 인간이기 때문에 신은 인간의 자식이다. 이것이 ‘옥구슬 민나’의 중심 서사다. 이런 ‘우주적 진실은 선율을 타고 냇물처럼 흐른다’
거칠던 땅에 싹이 나듯이
추운 밤 지나 해가 나듯이
그러나 여전히 겁이 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