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기는 어렵지만, 현호정 작가의 세계에는 ‘혼’(혹은 ‘온’)으로 불리는 중심이 있고, 그것은 시간과 외피를 타고 이동하거나 전이되며 상속된다. 때때로 그 흐름은 자연과학적인 세상이거나, 꿈이거나, 신화의 세계를 관통하며 전개된다. 매우 미시적이며, 감정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그녀의 서사는 거대하다. ‘라즈베리 부루’에서는 모성이 신화의 세상에서 이어지고,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에서 혼은 지구 차원으로 뭉쳐지고, ‘한 방울의 내가’에서 ‘온’은 물(水)의 순환을 통해 이어진다. 그리고 작가의 소설이 그리는 암울한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항상 결말은 긍정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로 가득하다.
그리고 작가가 다루는 ‘혼’은 꼭 인간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 결국 인간의 혼에 대한 비유일지라도 – 지구는 혼의 덩어리이고, 지하철도 혼을 가진 의식이 존재하고, 물방울의 ‘온’은 변이와 의지의 중심으로 묘사된다. ‘혼’은 모든 것에 편재한다. 작가는 그것을 신화의 틀로, 지구과학의 틀로, 자연과학의 틀로 묶어낸다. ‘혼’이 없을 때, 우리는 의지 없이 부유하고, 가치 없이 흡수되고, 변이 하지 못하고 소멸한다.
또, 현호정 작가의 소설이 주는 재미는 ‘이미지화된 문자’에도 있다.
혼이 둥실둥실 떠도는 모습을 ‘~~’(물결)로 표현하고, 21개의 매듭에 숨겨진 작은 두 개의 매듭을 OOOOOOOOOOOOOOOOOOOoo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 물의 변이에서 물의 크기를 O과 o 혹은 .(점)으로 표현하는 것(눈(雪)은 *으로, 눈의 결정으로 표현), 지하철의 빈자리와 사람을
‘므므옷므’로 표현하는 것 등, 분명 이러한 시도는 장난기라기보다는 언어에 대한 표현력의 확대로 평가될 수 있을 듯하다. 분명 이런 시도는 현실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현실적인 사용을 소설로 가져옴으로써, 작가는 소설적 내용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