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까지 읽음
하왕조의 시조 ‘禹’는 치수를 위해 황하 유역을 여행하며 곳곳에서 만난 국가와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남겼다. 이런 특이한 모습과 습속에 대한 기록이 그가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중국신화의 근간, [산해경]에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丈夫國’(장부국)이다. 남자로만 이루어진 이 나라가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은(지속성) 아이를 혼자서 낳을 수 있기 때문인데, 아이는 그들의 겨드랑이에서 나오거나 그림자로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어느 정도 사람의 모양을 갖춰가면 그들은 죽는다. 이렇게 국가의 연속성은 확보되는 것이다.
중국신화에도 여자로만 이루어진 ‘여인국’이 존재하고, 서양에서도 무시무시한 여전사 집단 아마존이 존재하며, 성모는 계시를 통해 예수를 잉태하였다. 여성의 경우 생산의 주체가 되는 것은 남성의 경우보다 훨씬 자연스러운데, 거인의 발을 밟고 잉태하거나, 신성한 장소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자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신화 속 일반적인 장면이다. 그럼 ‘장부국’에서는 어떻게 후손을 생산하는가? 책에서는 정확하게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자손에 대한 그들의 의지가 자식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의지는 ‘그림자’의 형태로 세상에 나온다.
최근에 [백의 그림자]를 읽었기 때문일까? 이 그림자의 탄생은 내게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백의 그림자]에서 문득 일어서는 그림자는 불안과 고통을 상징하지만, ‘장부국’에서의 그림자는 나의 분신이고, 나의 지속이며, 나의 의지이자 희망이다. 장부는 그의 의지가 뭉친 그림자를 보며, 지속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가 점점 살이 찌고, 사람의 형체를 갖춰감에 따라, 그 자신은 점점 죽어간다. 아마 장부에게는 희망과 죽음의 감정이 등가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것을 타개할 방법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희망으로 포장했을 것이고, 자신의 모두를 그림자에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죽음은 가벼워진다. 부조리한 신이 그래도 공평하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은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왕이건 노예이건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과 부자들은 불로초를 찾아 헤매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장부국의 장부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가벼운 것이다. 자신을 짓누르는 불안의 고통은 없다. 그들에게 죽음은 ‘父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