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래된 책을 기억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오래된 이어령 교수의 약 40년 전 베스트셀러 [축소지향의 일본인] 때문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일본論’은 겨우 이 두 책이지만, 지금껏 많은 수의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우리를 식민 지배한 민족이었고, 해방 이후에도 경제발전 분야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입사 초만 해도 일본의 경제 시스템과 정신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역사적인 질곡에도 불구하고, 기업체와 우리 일상에 퍼져있었다. 때문에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제2 외국어로 일본어가 가장 많았고, 우리 선배들은 피곤을 누르고, 밤에는 일본어 학원에서 가타가나와 히라가나를 배웠다.
내게 일본/ 일본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은 두바이에 주재하면서부터다. 출장 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엔 소니 센터가 있고, 일본 주재원들의 대부분은 소니센터를 끼고 있는 아파트에 모여 산다고 했다. 두바이에서도 마찬가지고, 터키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그들끼리 많이 모여 산다. 또 일본인들은 국제학교보다는 아이들을 그들 스스로 설립한 일본학교에 대부분 보낸다. 외국에서 우수한 외국 교육을 시킬 만도 한데 그들은 일본학교를 고집한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오래된 기억 속의 [국화와 칼]을 생각해 냈던 것 같다. [국화와 칼]을 다 읽고도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일본인들은 다소 정신병적인 세세함이 있고, 외부의 힘/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는 ‘기리’(의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이런 부담을 Hedge 하는 방법으로 ‘기리’가 지켜질 수 있는 조그만 사회를 그들 끼리 만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인들의 관심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어린 소년들이 비행기로 함선의 굴뚝을 향해 돌진하고, 천황을 부르며, 자신의 배를 가르고, 또 매우 어리둥절하게도 패전 후 미국인들을 환영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본/일본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문화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고, 1944년 국방성이 주관이 되어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인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고, 1946년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런 류의 책은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우리 할아버지 세대 이전의 일본인의 생활 패턴과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1930-40년대의 일본인들을 자꾸 오늘의 일본인에 비추어 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책이 쓰인 이후 현재는 두 세대 이상이 흘렀다. 이 두 세대 동안 일본은 근대화를 이루었고,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고, 문화적으로는 아마도 서양문명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아서 많이 변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일본/일본인 論’ 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국/한국인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과 한국의 유사성이 근본에서부터 존재하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를 통해 이식된 부분도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한국/한국인 論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리’로 표현되는 민감성과 예민은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인은 우리와 다르게, 상황의 급격한 전환이 매우 빠른 실용적이며, 매우 현실적인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