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닌을 알고, 생디칼리즘을 배우고,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무정부주의의 언저리를 계속 헤매고 있다. 다시 한번 느끼는 바이지만, ‘무정부주의’라는 단어는 무정부주의의 敵들이 만들어 낸 매우 성공한 정치 용어다. ‘무정부’라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공포의 폭탄을 면전에서 터트리는 것이다.
사실 무정부주의의 언저리를 배회했지만, 무정부주의의 현실 실험대인 ‘스페인 내전’은 잘 알지 못했다. 빨간 책들에 단편적으로 언급되던 내용을 읽었고, 레이나 소피아의 게르니카에 서서도, 남산의 대공 분실만 떠올렸다. 앙드레 말로의 [희망]도 처음 몇 장만 읽다 지루하여 덮어버렸다. 비로소 조지 오웰을 통해 1,2차 세계 대전 사이에 무슨 일이 스페인에서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조지 오웰이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인지 몰랐다. 문장에서 가끔씩 번뜩이는 오웰 스타일의 위트가 있고, 상황에 대한 탁월한 감정 묘사가 있다. 오웰의 글쓰기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진실성이다. 르포/수기라는 형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아주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오웰 글쓰기의 힘일 듯하다. 오웰은 내가 소설의 언저리를 기웃거릴 때 배웠던, ‘노동자에 대해 소설을 쓰려면 노동자가 되어봐야 한다’는 옛날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중시한다. 그의 전작 모두는 실제 그가 살았던 버마, 런던과 파리를 배경으로 하며, 단순히 배경을 넘어, 그가 직접 겪었던 상황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의 문장에서는 진실성이 묻어나는 것이다. 실제 경험이 조지 오웰 문장의 커다란 힘이다.
조지 오웰에게 있어 스페인 내전의 참전 경험은 소설가로서의 그의 활동을 전반과 후반을 나눈다. 만약 그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소설가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스페인 내전 후, 증폭된 정치의식은 [동물 농장]과 [1984]로 이어지며, 최종 [1984]에서는 불꽃이 되어 터진다. 그는 요즘에도 매우 유효한 전체주의의 폭력에 대한 경계를 1930년대에 언급한 선지자이다.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는 내내, 언론의 정치성에 대해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전쟁이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자기편끼리 총질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치 세계(권력을 위한 선전과 선동)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조지 오웰이 묘사하는 전쟁의 실상은 마치 동네 아이들의 전쟁놀이처럼 보이고, 전쟁에서 그 어떤 것보다 무섭고, 잔인한 것은 추위와 굶주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