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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by YT

몇 번 접어 책갈피로 쓴 주문서의 날짜로 보아, 2011년에 샀고, 그즈음 읽었을 것 같다. 약 8-9년 후에 이 책을 다시 집었다. 하버드라면 일단 80%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하버드 20년 명강의’라는 마케팅 메시지와 책 표지의 앞뒤를 덮은 찬사의 글들은 2011년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를 점유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도덕적 딜레마들을 예시로 철학적 논의를 끌고 가는 마이클 센델의 주장은 매우 간단하다. 그는 공리주의에서 시작하는데, 공리는 매우 상대적인 것으로, 상황에 따라 정의의 판단이 흔들릴 수 있고, 공리의 측정이 자유, 인권 등과 같은 고차원의 개념을 획일적으로 계산에 포함하는 단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공리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옮긴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판단의 절대 근거, 타협할 수 없는 최고의 선/권리로 취급하지만, 자유주의자의 자유는 맹수와 같고, 통제 불능의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인상을 준다. 여기에 철학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자유의 개념을 재정의하여, 최고 선으로 하늘에 메단 인물이 칸트다. 칸트는 자유를 자율로 바꾸고, 이 자율은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 계속 비추어보아야 하는, 매일매일을 반성하며 사는 성직자와 같은 자유라 할 수 있다. 동기를 중시하는 실천 이성은 이런 자율을 보증하는 권위가 된다. 칸트의 주장은 자유의 가장 밑바닥을 정비하는 논리이기에, 즉 철학적인 논리, 순수의 논리이기에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칸트의 논의는 자율과 정의 발생의 최초 단계에서는, 즉 모든 것이 순수한 상황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지만, 현대처럼 모든 도덕과 선, 정의의 문제가 현실로 타락해버린 세계에서는, 존경할 만한 철학적 업적은 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한계를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존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는 칸트적 생각의 연장선에 놓여있고, 순수 단계가 아닌, 이미 많은 것들이 섞여버린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정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방법론적으로 사고 실험을 통해 가언 합의라는 것이 가능하며, 정의의 문제에서 모든 임의적인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출발선을 같은 수준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존 롤스에게서 ‘평등’은 능력을 포함하는 모든 조건의 평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존 롤스의 주장도 역시 어찌 되었든 오래된 ‘자유주의’의 틀 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공동체적인 가치와 공동체에 대한 충직, 애정의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적절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 이후로 몇 백 년 동안 축적된 서양의 개인주의적 전통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의 주장이 나온다. 비록 out of fashion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끌어들여, 그동안의 도덕과 정의에 대한 논의는 자유와 같은 권리 중심이었음을 이야기하고, 권리에 앞서 ‘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근거로 인간은 서사적 존재, 어떤 이야기의 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루시가 아닌 이상 – 아마도 루시 조차도 -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의 아들, 어디의 시민, 어느 국가의 국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크고 작은 공동체의 선을 같이 노력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의 선에 대한 고민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며, 가능하지도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요약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의 문제는 단순히 분배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도덕과 선 등으로 확대하여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정의는 기본적으로 판단의 문제이며, 법을 만들고, 정책을 세우는 문제이다. 정의는 양자 간의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으며, 3자가 관여될 때 정의의 문제가 비로소 표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발생, 더 근원적으로는 공동체의 발생이 정의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국가는 정의가 제1의 목적이어야 하고, 법관은 정의의 판단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정치의 영역도 정의가 제1 원리가 되어야 한다. 정당의 제1 목표 ‘권력 창출’은 매우 잘못된 주장으로 야수와 같다. 모든 공공기관과 정치는 정의를 제1 원리로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대한 세부 디테일은 충분한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정말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는 그리 해야 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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