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약간 넘은 지점에 초록색 밑줄이 그어진 걸로 봐서, 과거에 적어도 그 지점까지는 읽은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책장 대신 사용 중인 옷장 속 마구 쌓아놓은 더미에서 발견했을 때, 아주 새로움을 느꼈다. 도무지 읽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어가면서 슬금슬금 저 아래에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고, 아마도 프리메이슨의 출현 즈음해서 독서를 접은 듯하다. 이 책을 다시 잡은 것은 최근 코로나 국면에서 부각된 신천지와 관련해서 기독교에서 기원한 이단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꾸로 가며 전개되는 이단의 기원 찾기는 매우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프리메이슨 부분에서 방향을 읽고 갈팡질팡하며, 영향관계에 기인한 사람들 이름(심지어 이름도 매우 길다)이 나열되는 것에 시선이 분산되면서 그 흥미가 급감한다. 과거 왜 끝까지 읽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과 서양의 신비주의 전통 패턴은 매우 유사하게 진행되었음을 발견한다. 우리 역사에서 무학대사와 관련한 한양 수도 정하기, 묘청의 서경 천도 주장, 어느 재벌 회장님의 관상가를 이용한 면접, 각종 중요 행사의 택일 과정, 부적 등 동양이나 서양이나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가도 신비주의 적인 전통은 인간 DNA를 통해 미래로 전수되는 듯 보이고, 가끔은 이러한 흐름이 정치 행위와 연결되어 실제 역사를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그냥 지나쳐 버렸던 서양 역사에서의 점성술과 연금술이 어떻게 현실과 관계하는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두 중요한 개념은 소위 ‘이단의 역사’(비주류의 역사) 속에서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 맺으며 펼쳐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까마득한 기원을 가지며…, 특히 점성술은 기독교 시대에 점점 그 속으로 스며드는 형태를 보이며, 연금술은 과학을 기본으로 하는 서양철학의 ‘이성’ 중심과 결부된다.
이 책에서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프리메이슨은 이 책의 기본 논조인 ‘이집트-미트라교(나는 이 미트라교를 이 연결고리에 포함시키고 싶다)-그노시스주의-마니교-보고 밀파-카타리파-헤르메스 주의’와는 결을 달리하는 듯하다. 이런 이단의 연결고리는 이원론적인 교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프리메이슨은 유대 적인 전통에 더욱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현대사의 실체인 ‘스코틀랜드 의전’은 너무나 친 유대 적이다. 그래서 내 생각엔 프리메이슨의 태동기 즉,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에 나타난 반종교적인 색채는 저자들의 이단 체인으로 설명 가능하나, 그 후 1800년대부터 진행된 프리메이슨의 활동은 보다 유대적인 카발라의 전통과 템플 기사단과의 영향 관계에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즉, ‘스코틀랜드 의전’은 이단의 역사에서도 다소 괴물 같은 존재로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프리메이슨의 전통이 비밀결사 형태로 강화되면서, 내부적인 힘(자체 구성원들의 권력관계)에 의하여 뒤틀려 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존재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로부터 전승되는 헤르메스주의는 이단의 역사에 이집트적인 CONTENTS를 제공한다. ‘그노시스주의-마니교-보고 밀파-카타리파’의 기독교 이단의 체인에서 헤르메스 주의는 덧대어진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비록 헤르메스 주의 의 역사가 기독교보다 월등히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재발견된 것을 고려했을 때) 즉, 기독교의 탄생 이후 이단의 역사는 그노시스로 시작하는 축과 기독교적 전통에서 비켜나 있는 헤르메스 주의의 두 축으로 구성되며 두 축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장미 십자회-프리메이슨’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이다. 헤르메스 주의는 종교적인 색채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데, 정신에 대한 강조와 이성의 힘에 의한 세상의 축복이라는 측면에서 서양의 로고스 중심주의, 과학의 발전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기원이 된다. 헤르메스 주의에 의해 理性은 서양에서 종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