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착한마녀 Nov 27. 2021

각자의 행복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엇이 있나요?

 학원 끝나고 딸이 돌아왔다. 시험기간이라고 일요일인데도 5시간 넘게 자습을 하고 왔으니 온몸에 힘이 빠질 법도 하다. (더군다나 공부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인데)

많이 힘들고 지쳐 보였다.

“우리 딸! 고생했어”

나는 없는 애교를 끌어모아 딸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본체만체하고는 딴 소리를 했다.


“아! 힘들어. 충전을 좀 해야겠어.”


딸은 방에 들어가 기리보이의 노래를 크게 틀더니 한바탕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이제 좀 풀리네.”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거실로 나온 딸의 표정은 방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온몸에 충만한 기를 받아 피로가 싹 사라진 듯 보였다.


“기리보이가 그렇게 좋니?”

“어, 당연하지”

“엄마는 힐링하고 싶을 때 생각나는 게 뭐야?”

“엄마는 식물이지!”

“아, 맞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고, 딸도 바로 수긍했다.



내 딸은 가수 기리보이의 왕펜이다. 핸드폰 배경화면은 매번 기리보이다. 음악과 스타일은 물론 외모, 말투, 행동 그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나중에 문신까지 따라 하고 싶다고 해서 걱정이다)

처음에 기리보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개그맨 ‘김기리’가 가수도 하느냐고 물었다가 된통 창피를 당했었다.(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민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이후 그의 노래를 들어보니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평소 암기력이 좋지 않은 딸아이가 가사는 외우겠나 싶었는데, 기리보이의 노래 가사는 기막히게 잘 외우고, 따라 부르는 게 아닌가!


'이렇게 공부했다면 전교 1등이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너무 꼰대 같은 생각 같아서 밀어 넣었다.



딸에게 기리보이가 있다면 나에겐 식물들이 있다.

힘들고 지친 순간, 이를테면 숨 막히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했을 때나 집안일로 정신없다가 한숨 돌릴 때, 내가 찾는 건 다름 아닌 식물들이다.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많은 힘과 위로를 받는다.


새로운 잎을 만들어 내는 식물들,

새로운 꽃들을 매번 피어 올리는 식물들.

새로운 자구들을 만들어내는 식물들.

새로운 뿌리를 뻗어가는 식물들.

새로운 가지를 한없이 늘어뜨리는 식물들.

그 자리에서 항상 싱싱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나는 식물들


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변화하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함께 더 열심히 살고 살고 싶어 진다.

'멈춘 듯 쉼 없는 이 공간.'

식물들과 같이 숨 쉬고, 머무를 수 있는 베란다 공간이 특별히 좋다.



살아가면서 위로가 되어주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기리보이의 음악에 빠져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볼 때, 베란다에서 멍하니 식물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베란다에서 식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1, 2시간도 꼭 찰나 같다. 하루 종일 바라보고만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고 그냥 좋다.

'내 딸에게 기리보이의 음악도 그러하겠지.'



각자의 방식대로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모두 행복하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힘이 되는 것, 행복을 가져다줄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