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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Nov 28. 2021

나의 식물 친구, 아버님

각자의 습성과 방식을 존중하자

결혼 직후, 10년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고, 가족이라 해도 처음에는 남과 같았다.  같은 집에서 낯선 가족과 함께 산다는 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온전히 나만의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답답하고 불편할 때가 많았다. 특히 시아버님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온화하고 친구 같은 성격의 친정아버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시아버님은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으셨고 항상 화가 나있는 사람처럼 인상을 쓰고 소리치듯 말씀하셨다. (물론 지금도 그러신 편이다.)


“화장실 불은 누가 안 껐냐?”

“재활용할 쓰레기를 누가 쓰레기통에 넣었니?”

“누가 음식을 남겼니?”

“몇 시인데 지금까지 텔레비전을 보냐?”


하시는 말씀의 대부분이 잔소리와 지적이어서 나는 야단맞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시아버님의 잔소리를 피해 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며느리라서 봐주시는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 날아가는 호통마저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아서 무서웠고 공포감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엄하고 차갑던 시아버님과 나는 이제 더없이 좋은 식물 친구로 지낸다.

분가 후, 내가 식물을 키우면서 시아버님과 취미가 같아져서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아버님과 나는 식물 수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버님, 금전수가 전에는 시들시들하더니 싱싱해졌네요.”

“물을 많이 안 주니까 더 잘 살더라고, 전에는 모르고 물을 자주 줬거든.”

“아버님, 이 꽃은 너무 이쁜데요! 이름이 뭐예요?”

“덴드롱인데. 꽃이 잘 펴, 가지를 잘라 줄 테니 물에 꽂았다가 뿌리내리면 심어봐”



시아버님이 키우는 식물을 칭찬하면 아이처럼 웃으시고, 궁금해하면 열성적으로 설명해주신다. 가족들에게 온갖 잔소리를 퍼부어대실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식물을 품는 그 모습이 한없이 자상하고 인자하셨다.



어느 날 시댁에 갔을 때, 아버님께서 예쁘고 작은 화분을 주셨다.


“선인장처럼 생겼는데 꽃이 펴, 예쁘지?”

“아버님, 꽃이 진짜 귀엽네요. 꽃기린 맞죠?”

“꽃기린이야? 이름은 몰랐는데 꽃기린이구나”


내 말을 듣고 이름을 바로 메모지에 적어두셨다.


화분을 들고 오면서 꽃기린을 바라보는데 왜 자꾸 아버님 얼굴이 떠오르는지.

가시가 돋친 딱딱한 가지가 아버님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아버님의 엄격한 모습이라면 뾰족한 가시 사이에 수줍게 피어나는 작은 꽃들은 엄격한 모습 뒤에 한없이 흘러넘치는 따뜻한 사랑과 다정함으로 느껴졌다.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밴 시아버님 눈에는 젊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다만 유연한 표현법에 익숙하지 못해 거칠게 전달하셨을 뿐이다. 시아버님을 이해하고 나자 그렇게 날카롭던 가시가 부드럽고 말랑하게만 느껴졌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식물을 이해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자의 습성과 방식을 감싸 안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고, 결국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옛날 호랑이같이 차갑고 무섭던 시아버님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나니 이제야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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