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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Dec 05. 2021

서로에게 적응한다는 것

식물 로즈마리와 나

로즈마리는 손끝을 스칠 때마다 개운한 향을 뿜는다.

특별히 예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상쾌한 향기를 놓칠 수가 없어서 꽃집에서 사 오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윽한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좋다. 그렇게 나는 로즈마리를 내 품으로 들였다.



그런데 이 식물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렇게 싱싱하고 향기롭던 로즈마리가 우리 집에만 들어오면 한 달을 못 버티고 말라갔다. 물을 적게 주든, 넉넉히 주든, 창문 앞에 두든, 햇볕에 내맡기든 상관없었다. 한쪽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 며칠 안에 잎 전체가 말라서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것을 사서 좀 약했나 싶어서 조금 큰 것을 사서 키워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을 떠나 초록별로 간 식물은 웬만해선 다시 들이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근데 로즈마리에게는 끈질긴 마력이 있나 보다. ‘이번에는 꼭....’, '다시 한번만!' 혼자 여러 번 다짐하고 도전하게 만든다. 적어도 10개 이상의 로즈마리를 초록별로 보낸 것 같다. 그러고 또 도전하고......



지금은 2년째 되어가는 로즈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렇게 로즈마리가 어렵더니 어느 날 내 품에 들어온 로즈마리는 갈수록 싱싱하게 내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엔 오히려 마음을 비웠는데도 말이다. 내가 그 전의 로즈마리와 특별히 다른 대접을 해준 건 없는 것 같은데도 이 녀석은 기특하게 내 베란다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싱싱해지고 진항 향기까지 내뿜으며 새 잎을 틔운다. 높이 올라오는 가지 끝을 잘라서 삽목이라는 것도 해보았다. 흙에 푹 꽂아놓은 여린 가지 끝에서 금세 길고 긴 뿌리가 생겼다. 그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화분도 3개쯤은 되었다.

내가 그동안의 로즈마리를 보낸 경험치가 쌓여서 로즈마리를 다루는 솜씨가 나아진 것인지, 우리 집에 들여온 이 로즈마리가 특별히 강인한 아이인지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가 서로에게 적응했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조금 부족한 점이 있어도 허용해 가면서 스스로가 더욱 강해지는 방법을 터득해 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식물과의 관계도 인간과의 관계만큼이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해와 배려를 넘어서 서로에게 잘 적응이 되었을 때 좋은 관계가 오래오래 유지될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 시댁 식구들 중에서 동서는 가까워지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둘 다 며느리라는 공통점만으로도 가까이 지낼 이유가 충분했을 텐데 히한하게도 처음엔 동서가 불편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나이도, 밝고 상냥한 성격도 한없이 거리감이 느껴졌다. 지금은 시댁 식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동서와 무뚝뚝하고 꼼꼼하지 못한 나. 동서와 나는 너무도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의 부족함과 넘침을 적절히 맞춰가면서 이 집 며느리로서의 애환(?)을 공유하는 너무도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 어느 순간 서로의 성향을 파악해 적당히 타협하고 배려해주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 집 베란다 환경에 적응한 로즈마리처럼 동서도 나에게, 나도 동서에게 적응한 덕분이다. 서로가 완벽하게 꼭 맞진 않겠지만 빈 부분은 이해해주고 채워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우리 앞으로도 친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내 곁에서 적응해서 평생을 함께 갈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게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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