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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Dec 20. 2021

내 든든한 페페 친구들

내 식물 이야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놀이터, 야외무대 연못, 분수공원 등은 시민들에게 쉼터이자 문화공간이다. 이름은 같지만 규모가 훨씬 작은 마로니에 공원이 우리 동네에도 있다. 커다란 미끄럼틀은 아이들이 놀기 좋고, 곳곳에 있는 벤치와 정자는 주민들이 쉬어가기 좋다.


두 공원의 이름이 마로니에인 이유는 공원 중앙에 마로니에 나무가 자리하고 있어서이다. 마로니에 나무는 오랜 세월을 지내온 만큼 크고 웅장해서 머무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뿜어주는 것은 물론 멋진 경관을 선물하고 시원한 그늘 또한 만들어 준다.


나무 이름이 공간을 대표한다는 건 자연이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 집을 대표할 만한 식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페페의 집’, ‘페페 하우스’ 쯤으로 불리면 좋을 것 같다. 페페의 매력에 푹 빠져 갖가지 페페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페페의 정식 명칭은 페페로미아이고 후추과에 속하는 식물들을 통칭한다. 아몬드 페페, 수박 페페, 필레아 페페, 신홀리 페페, 이사벨라 페페, 픽시라임 페페, 호프 페페, 슈미레드 페페, 에메랄드 리플 페페, 프로스트라타 페페, 뉴핑크 레이디 페페 등 10여 종의 페페를 키우고 있다. 페페로미아는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높은 광량도 필요 없다. 성장 속도도 적당해서 한마디로 키우기 무난하고 쉬운 식물이다. 페페로미아들은 습성이 비슷하지만, 저마다 생김새가 다양하고 개성 넘쳐서 키우는 재미가 솔솔 하다. 뿐만 아니라 내 고민을 다 들어줄 듯 듬직해 보여서 좋다.



가족에 관한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을 때마다 나는 페페에게 달려간다.

“아들이 중학교 입학한 지 3일 만에 음악실 유리를 깨뜨렸어”

페페가 방긋 웃으며 이렇게 위로하는 것만 같다.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지,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네. 괜찮아.”

그 말을 상상하면 마음이 절로 놓인다. ‘맞아. 다쳤으면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우리 남편은 왜 이리 속을 썩이는지? 달리기 하다가 오른쪽 무릎인대 끊어지고, 농구하다가 왼쪽 아킬레스건 인대 끊어진 거도 모자라 얼마 전에는 자전거 타다가 오른쪽 어깨 인대마저 끊어졌어”

남편 얼굴을 볼 때마다 미운 감정이 불쑥불쑥 들길래 페페에게 일렀다.

“다친데 또 다치는 것보다는 낫지.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 괜찮아.”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다친데 또 다쳤으면 평생 더 심각했겠지.’

“우리 딸은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지금 친구와 통화 중이야. 벌써 1시간째야. 심하지 않니?”

할 일을 미뤄둔 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페페에게 말했다.

“그 나이 때 다 그래. 친구가 좋을 때야. 괜찮아.”


페페의 위로만 있으면 모든 것이 진짜 괜찮아진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고민 보따리들도 어느덧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으며 가벼워진다.



내가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다 받아주고 고민하지 말라고, 다 지나갈 것이라고 털털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보여주는 든든한 친구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꺼내기 힘든 말들을 다 받아주고 쿨하게 넘길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고마운 존재들.

우리 집을 대표하는 듬직한 페페 친구들!

이렇게 온전히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참 힘이 되고 행복한 일이다.



가끔은 힘든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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