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된 암을 이겨낸 1살 고양이

종격동 림프종 진단부터 완치까지

by 아자모노


수의사라는 직업은 수많은 생명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기쁨의 순간도 많지만,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겨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 수많은 기억 속에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토르’라는 이름의 고양이입니다.


거제도에 살던 토르는 이제 막 한 살을 넘긴, 호기심 많고 장난기 넘치는 먼치킨 고양이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하루에 50번이 넘는 구토를 했습니다. 지역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보호자는 급하게 2시간 거리인 저희 병원으로 아이를 데려와야 했습니다. 토르의 작은 숨통을 조여오던 것은 ‘종격동 림프종(Mediastinal Lymphoma)’이었습니다. 고양이 림프종은 가장 흔한 종양 중 하나로,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라는 혈액세포가 암으로 변하는 병입니다. 혈액암의 일종이기에 몸 구석구석 어디에나 발생할 수 있는데, 토르의 경우 양쪽 폐 사이의 공간인 종격동에 거대한 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종양이 폐를 짓눌러 숨을 얕게 만들고 식도를 압박해, 아이는 무엇을 삼키기만 하면 곧바로 토해내는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장님, 우리 토르 살 수 있을까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를 보며 무너져 내리는 보호자 앞에서, 저는 차마 ‘괜찮을 겁니다’라는 쉬운 위로를 건넬 수 없었습니다. 세포검사 결과는 악성도 높은 T세포 림프종. 림프종은 세포 종류에 따라 B세포와 T세포로 나뉘는데, T세포 림프종은 항암 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30~40%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것. 그렇게 토르와 보호자, 그리고 저희 의료진의 길고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종양의 크기를 줄여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종양에 방사선치료를 5차례 진행했고, 다행히 토르의 작은 몸은 치료를 잘 견뎌주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종양은 눈에 띄게 줄었고, 토르는 조금씩 편안하게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던 그때, 또 다른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퇴원 날 아침, 토르가 뒷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응급 MRI 검사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암세포가 등뼈(T10-12)에 전이되어 척수강 내로 파고들며 신경을 마비시킨 것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한 살. 가슴 속의 암과 싸워 이제 막 한숨 돌리려던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보호자에게 최악의 상황들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척추에 방사선 치료를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마비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곳으로 또 전이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까지도요.


하지만 보호자도, 토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수의사는 “안락사”라고 하는 가장 피하고 싶은 옵션을 보호자에게 제시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보호자를 통하여 의료진은 용기를 얻습니다.


보통 방사선치료는 계획을 세우는데 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마비가 진행된 상황에서 시간을 더 끌 수는 없었습니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준비하여 다음날 바로 척추에 또 방사선치료를 진행하였습니다.


동물은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CT, MRI 검사나 방사선치료를 할때도 매번 전신마취를 해야 합니다. 1살이 이제막 넘은 고양이(사람 나이로 치면 10살 정도입니다.)가 2주동안 10번이 넘는 마취를 견뎌주었습니다.


치료가 끝난 직후 토르는 조금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다행히 보행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토르는 20차가 넘는 고된 항암치료를 꿋꿋하게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완전 관해(Complete Remission)’라는 꿈같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10번의 방사선치료, 20여번의 항암치료가 끝나고, 2년 후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토르는 CT 재촬영을 통하여 재발과 전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사람의 경우 완전관해 후 5년간 재발이 없으면 완치판정, 개와 고양이는 2~3년)


동물의 가장 많은 사망원인은 암입니다. 아직 치료할 수 없거나 극히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수의사들의 노력과 연구들 덕에 이제 완치가 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반려동물이 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보호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아이가 겪을 고통, 만만치 않은 치료 비용, 병원을 오가는 현실적인 어려움 등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선택은 온전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보호자님들께서 수의사에게 솔직한 마음을 터놓으셨으면 합니다. 치료 과정에 대한 두려움, 비용에 대한 부담, 혹은 시간적인 제약까지도요. 저희 수의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이와 보호자에게 가장 최선인 길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그 길이 완치를 향하지 않더라도, 아이의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우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어떤 결과이든, 보호자와 수의사가 함께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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