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논문을 잘 정리해줄까요?
동물 암을 진료하는 수의사에게 매일은 새로운 도전과 같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선이었던 치료법이 오늘은 아닐 수 있고, 희귀 종양으로 진단된 환자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될 정보가 저 멀리 해외 학회지에 발표되기도 합니다. 종양학은 그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수의사의 숙명이자 의무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오전부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진료, 복잡한 케이스에 대한 고민, 그리고 보호자분들과의 상담까지.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지친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검색하는 일은 솔직히 버거웠습니다. 봐야 할 논문은 쌓여가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혹시 내가 모르는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똑똑했던 첫 만남, 그리고 변화
그러다 동료의 추천으로 AI 논문 검색 툴(Scispace)을 반신반의하며 사용해 보게 되었습니다. ‘AI가 논문을 얼마나 잘 이해하겠어’라는 약간의 불신도 있었습니다.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암에 대한 최신 표적치료제 논문을 찾아야 하는, 꽤 구체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단순히 키워드로 검색하는 것을 넘어, 제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논문들을 정확하게 필터링해 주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들의 핵심 내용과 결론을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해 주는 기능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떤 논문을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할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었고, 번역 기능을 통해 언어의 장벽 없이 내용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정보 수집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사명감으로
AI의 편리함을 경험하며, 저는 단순히 ‘편하다’는 감정을 넘어선 어떤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기술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수의사 동료들이 함께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임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수의학에 특화된 AI를 만들 수 있다면?’
진료 현장에서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열망은 결국 저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바로, 수의학 AI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도전이었습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바로 AI 분야의 전문가인,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제 동생이었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함께 미래를 만들어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수의학의 발전과 동물들 그리고 원헬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가진 전문성을 합쳐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보자고 말입니다. 결국 제 진심이 통했고, 동생은 교직을 내려놓고 저와 함께 AI 개발의 여정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진료실의 경험으로 AI를 만들다
이제 저희는 AI를 직접 개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논문을 검색하는 것을 넘어, 각 환자의 의료 기록(EMR), 영상 데이터, 유전자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치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AI가 방대한 자료 수집과 1차 분석을 맡아주면, 수의사는 거기서 얻은 시간을 환자의 상태를 더 면밀히 살피고 보호자와 더 깊이 소통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AI는 결코 수의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최고의 전문가를 더욱 뛰어나게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기술과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협업, 저희는 그 모델을 수의학 분야에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