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연구하는 과학
최근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이라는 학회에 다녀왔습니다. '연구를 연구하는' 이 학문은, 과학 지식이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하는지를 데이터로 분석합니다. 어떤 연구팀이 더 혁신적인지, 어떤 논문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원리를 탐구하는 자리였습니다.
학회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 주제는 단연 '인공지능(AI)'이었습니다. 50년 된 생명과학 난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을 풀어낸 '알파폴드'의 등장은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이제 AI는 신약 개발, 효소 디자인 등 실제 연구 현장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AI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며, 논문까지 쓰는 시대입니다."
학회에서 소개된 몇 가지 사례들은 특히 주목할 만했습니다. 스스로 가설을 세워 효모 유전자의 기능을 밝힌 로봇 과학자 '아담(Adam)', 인간의 개입 없이 새로운 배터리 전해질을 발견해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AI 시스템의 이야기는 AI의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AI의 도움을 받은 연구가 그렇지 않은 연구보다 논문 인용률이 평균 25% 더 높다는 데이터는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물론 AI 생성물을 감별하는 기술이나 저작권, 표절 같은 윤리적 쟁점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방향은 '어떻게 AI를 현명하게 활용할 것인가'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학회는 AI뿐만 아니라, 과학 연구 시스템 자체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배경의 대규모 연구팀이 더 영향력 있는 결과를 내놓는 경향이 있으며, 코로나19 이후 보편화된 원격 협업이 파격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는 다소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한, 인기 있는 분야에만 연구비가 쏠리는 거대담론을 지적하며, 당장은 주목받지 못해도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잠자는 숲속의 미녀(sleeping beauties, 논문이 출판되고 한동안 인용되지 못하다가, 몇십년 후에 주목받고 인용수가 느는 연구)' 같은 연구를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감을 얻었습니다. 연구 생태계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들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원헬스(One Health)'라는 분야를 떠올렸습니다. 원헬스는 사람, 동물, 환경의 건강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 함께 건강해야 인류가 지속 가능하다는 개념이며, 수의학은 바로 이 원헬스의 중요한 축을 담당합니다.
솔직히 말해, 거대한 생명공학이나 인의학(人醫學) 연구의 흐름 속에서 수의학 연구는 종종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AI라는 새로운 도구는 어쩌면 이러한 경계를 허물고, 수의학이 원헬스라는 더 큰 틀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원헬스와 수의학 연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가령, 야생동물의 질병 데이터, 기후 변화 데이터, 인간의 이동 패턴을 AI로 통합 분석하여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의 출현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을까요? 혹은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나오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항생제 내성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더 나아가 비교의학(Comparative Medicine)의 관점에서 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공통으로 가진 상동유전자(homologous genes)의 위치, 기능, 염기서열 차이를 AI로 비교 분석한다면 어떨까요? 동물의 질병 유전자를 연구함으로써 역으로 인간 질병의 기전을 파악하는 단서를 찾는 것입니다. 실제로, 특정 암에 잘 걸리는 골든 리트리버 같은 견종의 유전체와 인간 암 환자의 유전체를 AI로 비교 분석하여, 암의 원인이 되는 공통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려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동물의 암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암 정복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AI와의 공존은 바로 이런 거대하고 복잡한 질문에 답을 찾는 속도를 높여줄 것입니다. 과거에는 수십 년이 걸렸을 데이터 분석을 단축하고, 인간이 미처 보지 못했던 연결고리를 찾아내어 더 나은 연구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번 학회는 AI라는 도구가 원헬스의 궁극적 목표, 즉 '모두의 건강한 생존'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인사이트를 주었습니다.
1. 알파폴드(AlphaFold)의 단백질 구조 예측
논문: Jumper, J., et al. "Highly accurate protein structure prediction with AlphaFold." Nature (2021).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819-2
2. 로봇 과학자 아담(Adam)의 자율적 과학 발견
논문: King, R. D., et al. "The Automation of Science." Science (2009).
링크: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165620
3. AI 시스템의 자율적 신소재(배터리 전해질) 발견
논문: Boiko, D. A., et al. "Autonomous chemical research with large language models." Nature (2023).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6792-0
4. AI 언급 논문의 인용률 증가 분석
뉴스 분석: Callaway, E. "Scientific papers that mention AI get a citation boost." Nature (2024).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4-03355-9
5. 비교의학(Comparative Medicine)과 AI 활용 사례
기초 연구: Tonomura, N., et al. "Genome-wide Association Study Identifies Shared Risk Loci Common to Two Malignancies in Golden Retrievers." PLOS Genetics (2015).
링크: https://journals.plos.org/plosgenetics/article?id=10.1371/journal.pgen.1004922
AI 활용 최신 동향: "Novel Research Leverages AI to Identify Dogs at Higher Risk for Cancer." Morris Animal Foundation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