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by 독나리

나에겐 외할머니의 존재는 엄마다.

엄마는 밖의 일 보시느라 항상 바쁘시고, 눈을 마주칠 겨를이 거의 없으셨다. 모든 것이 할머니의 손길이다. 도시락부터 준비물 등등 어릴 때 세세한 나의 삶은 모두 외할머니의 손길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쪽진 머리에 참빗을 사용하셨고, 치마저고리 외에는 다른 옷을 입으신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 자랐고 이사오기 얼마 전까지도 그 다듬이돌과 방망이는 내가 지니고 있었다.

테레비죤에 나오는 요리 프로를 열심히 보시려 하셨던 것도 기억한다. 주부가 된 후 깨달았다. 매일매일의 식탁메뉴와 도시락반찬을 혼자 책임 지신 할머니의 힘듦을. 또 그 큰 가구들을 혼자 이리저리 옮겨 놓으셔서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곤 하시기도 했다. 나는 그때 가구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것이 할머니의 취미신가 보다 생각할 지경이었다.


당시에는 난 이모들과 한 집에서 자랐다. 나이차이는 7살 정도였는데도 할머니의 떠받듬으로 나는 상전 노릇을 다해서 같이 맞먹을 정도로 싸우기도 많이 했다. 꾸중 듣는 건 항상 이모들 이였다. 할머니의 사랑은 내 차지였다. 조금 더 커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할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어도 이모들을 더사랑할걸'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할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이모들은 할머니에게서 꾸중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거의 꾸중을 하지 않으셨다. 물론 나의 차분한 성격 고분고분 어른의 말에 순종하는 성격이 한 몫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할머니는 나에게 고운 정을 쏟아 부우 신 것이다. 그런데 왜 그리 나는 안달이었을까?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이다'라는 말을 요즈음 어디선가 들었다. 아마도 미운 정도 나에게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었는가 보다.


외할머니는 우리 집의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앞에 나서는 일이 없으셨다. 모든 일에 뒤켠에 계셨다. 한마디로 아무 권한이 없으셨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는 할머니 그저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식을 지니고 계셨던 것 같다.

세월은 흘러 할머니는 쾌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셨다. 그리고 이모들 모두 짝을 찾아 각자의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딸린 식구까지 모여 북적대곤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집의 흐름이 바뀐 건 없었다. 같이 일 도와주시던 아줌마가 그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때마다 온 식구 그에 딸린 식구까지 어김없이 모이던 의식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엔 이런저런 핑계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가 멀이 지기 시작했다.


이런 모든 일의 시작은 아무 능력 없고 존재감 없었던 할머니의 존재가 사라짐으로 시작되었다.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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