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이 온다'를 읽고
요즘 대세는 '파이어'다. 좀 연배가 있는 사람들은 과거 도널드 트럼프의 '자넨 해고일세!'를 떠올리겠지만 이 파이어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저 먼저 떠납니다~'에 가깝다.
파이어란 무엇일까?
F: Financial
I: Independence
R: Retire
E: Early
대충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먼저 은퇴한다는 말이다.
왜 이런 개념이 나왔을까?
이 책은 2019년에 미국의 영상제작자 스콧 리킨스가 낸 책이다.
원제는 'Playing with FIRE: How far would you go for financial freedom?'이다.
저자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이 책에서 그 배경과 비하인드를 풀어놓았다.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파이어족 도전기를 컨텐츠화 한 것이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에서 왜 파이어에 이끌렸는지 이야기한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진 가족이라면 돈이 쪼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나가지만 수입의 큰 부분을 아이돌봄비용으로 내야 하는 아내와 아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회사에 들어가 꾸역꾸역 일하는 남편. 대부분 그렇게 살지만 저자는 좀 다른 삶을 꿈꿨다. 초반에 그것은 아주 성공적인 사업 계획 같은 것이었다. 한 방을 터뜨려서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며 돈을 억수로 벌어야지와 같은. 그러나 그 한 방이 쉽사리 보이지 않았고, 어느날 처럼 출근하던 저자는 팟캐스트에서 우연히 파이어 전도사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용이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저자는 어느새 갓길에 차를 세우고 팟캐스트를 끝까지 듣는다. 대충 이런 것이었다. 인덱스 펀드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남자가 30세에 은퇴해 가족들과 1년에 3천만원 이하로 산다는 것이다. 충분히 돈을 벌어둔 데다 생활 방식 자체가 검소해서 사는데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싸구려 음식만 먹는 것도 아니고, 돈을 써야할 때는 썼다. 예산 안에서.
당시 저자는 1년에 1억 3천 200만원을 생활비로 쓰고 있었다.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 가족이 1년 동안 쓸 금액을 3개월만에 쓰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가 1년을 살 돈이면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 가족은 4년을 살 수 있었다.
그 길로 저자는 가계의 자산과 지출을 파악하고 아내를 설득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기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아내는 저자의 계획을 지지한다.
이제 부부 파이어단이 된 가족은 하나씩 파이어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아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던 BMW 리스차량을 되팔고, 매달 엄청난 월세를 내 온 해변가의 아름다운 월세집을 떠난다. 사치스러웠던 점심 식사와 저녁 외식은 도시락과 가정식으로 바뀌었고, 파이어에 친화적이지 않은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1년간 여기저기 다니며 살아보고 그 뒤에 좀 더 생활비가 저렴한 곳에 정착할 계획도 세운다.
이 와중에 영상제작이 업인 저자는 미니멀리즘과 달리 아직 파이어를 다룬 영상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큐멘터리를 기획한다.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 우연히 bbc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투자금을 확보한 프로젝트는 인원 확충을 통해 날개를 달게 된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아내의 부모님과 자신의 부모님 댁에서 셋방살이를 해보며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친구들의 파이어에 대한 천대도 받지만 꿋꿋이 버틴다. 그리고 저자를 파이어로 이끈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를 직접 만나기도 하고, 파이어 족 국제(?) 컨퍼런스와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가 기획한 파이어 등산 캠프에 가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파이어족들과 교류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책에는 파이어족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대피하고 종래에는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이다. 10분 안에 집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물건은 정말 한정적이었고, 우연한 그 자연재해로 친구들 중 일부는 전재산을 잃기도 했다. 그 많은 물건들이 정작 위급할 때는 짐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파이어라는 개념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밀레니얼들의 우울증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부모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들은 어렵게 직장에 들어간 뒤 그 생활을 60세가 넘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깊이 절망한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 삶을 다 바쳐서 추구할만한 가치나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젊을 때 바짝 졸라매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충분히 돈을 번 뒤 따분한 직장에서 나오겠다는 꿈을 가진다는 것이다.
책에 나온 한 변호사는 그런 생각으로 일찍 회사를 나왔으나 본인의 개인 사무소를 차렸다. 그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 뒤에도 본인의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회사가 좀 더 좋은 고용조건을 제시했다면 아마 회사에 남았을 것이다. 다른 파이어족들도 은퇴를 한 뒤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하고 있다.
이렇듯 파이어가 되는 이유와 파이어가 된 후의 삶은 제각각이다.
저자는 파이어가 된 사람들의 소득, 학력, 인종, 국적, 결혼유무 등이 모두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좀 더 빨리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소득이 높지 않다고 목표를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생활비의 수준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초보 파이어족 3인 가족이 어떻게 파이어를 받아들이고, 체화하며, 정착하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내 삶에서 값비싼 커피와 자가용, 옷, 취미생활, 여행, 외식, 기타 있으면 좋은 물건들을 어디까지 포기할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을 주변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지시킬 것인지 등등 초보가 겪는 어려움들이 잘 서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아직 미니멀리즘의 어딘가에서 파이어로 걸어가는 중이다.
우선 젊을 때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적극적으로 저축하고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번다에 동의한다.
문제는 소비를 어디부터 어떻게 줄일 것인가 이다.
아직은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물건을 살 때는 신중하며, 식비를 아끼는 미니멀리즘 수준이다.
일단 재정상태부터 다시 정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