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드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
품 안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단연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
이 친숙하면서도 약간의 어색함이 늘 남아있을 것 같은 단어가 이제는 나를 설명할 때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비해 아버지라는 단어는 왜 늘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도 나를 이렇게 안아 재웠겠지?라고 잠시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없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여러 이미지의 파편들이다.
우선 까끌까끌한 수염의 감촉. 밤에 잘 자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추던 아버지의 수염은 적절히 까끌까끌했다. 나는 그 까끌까끌함이 묘한 방식으로 좋았다. 가려운 곳을 대고 시원하게 비비고 싶었다.
다음으로는 냄새.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냄새는 여러 냄새를 두고 맞춰보라면 맞출 수 있지만 먼저 이러저러한 향기라고 묘사하긴 참 어려운 냄새다. 굳이 묘사를 하려면 아버지가 오랫동안 입어온 초록색 외투를 꺼내와야 한다. 결혼 초기에 어머니가 큰맘 먹고 샀다는 그 외투를 아버지는 20년이 넘게 입으셨다. 그 외투는 늘 바깥의 찬바람 냄새를 머금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냄새와 섞여 내겐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 외투에는 털어 없애려고 꽤 오래 털었지만 완전히 숨길 순 없었던 약간의 담배 냄새, 종이컵에 넣어 마셨을 맥심 원두커피 냄새, 90년대 포장마차의 오뎅 국물 냄새 등이 이곳저곳에 아주 약간씩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10살이 될 무렵 담배를 완전히 끊으셨지만, 마침 그때쯤부터 나도 아버지의 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 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아버지 냄새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신 것은 본인의 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도 있었겠지만, 우리 가족이라면 그게 나와 동생의 시도 때도 없는 시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다.
나와 동생은 평일의 - 아니, 그러고보니 그 때는 주 6일을 일했었지 - 고단한 일을 마치시고 잠깐의 여가를 즐기려는 아버지를 지치지도 않고 괴롭혔다. 가끔 근처에 사시는 외삼촌이 와서 아버지와 '잠깐 어른들의 대화를 한다'는 핑계로 베란다에 가서 담배를 피시기 시작하면 나와 동생은 커다란 스케치북에 어디서 주워들은 '절대 금연'이라는 말을 비뚤비뚤하지만 큼지막하게 적어 투명 유리창 반대편에 들고 서서 잔뜩 과장섞인 기침을 콜록콜록 하곤 했다. 외투에서 담배를 몰래 빼서 숨겨둔 적도 있었다. 사실 고백하건대 아버지가 진짜 담배를 끊으실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어느샌가부턴 그냥 시위 자체가 재밌어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한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게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하는걸 못하게 하는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담배를 완전히 끊으셨다.
나는 내 품 안의 작은 아기가 어느 새 자라, 아기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내가 즐겨온 뭔가를 하지 말라고 매일같이 시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커피 금지', '9시부터 피아노 금지', '스마트폰 절대 금지'와 같은 글씨를 스케치북에 커다랗고 비뚤비뚤하게 적어놓고 하루종일 날 쫓아다니는 모습. 아버지가 그때는 몹시 짜증나셨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이 모습을 상상하니 그저 귀엽게 느껴지긴 했다. 아버지도 그랬을까?
하지만 귀여운 것과는 별개로, 오랫동안 즐겨온 취미나 기호를 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중독성이 높기로 악명 높은 그 담배를 말이다. 나는 오직 아기를 위해 내가 오랫동안 즐겨온 것들을, 줄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타협하지 않고 완전히 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심하며 나는 아버지의 사랑이, 기억에 날만큼의 직접적인 표현이 적었을지언정 결코 적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표현은, 인생의 반은 경상도에서, 나머지 반은 경기권에서 살아본 30대의 남자인 내가 지금 와서 평가하자면 '경상도 남자로선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일평생 경상도에서 살아온 남자들과 같이, 말로 직접적인 사랑의 표현을 하는 데에는 매우 서툰 분이었다.
대신 아버지는 편지를 몹시 화려하게 적었다. 사실 좀 지나쳤다. 문장에 미사여구가 빠지면 안된다는 스스로와의 규칙이라도 있으셨던건지, 매번 이러저러한 미사여구를 붙이셨는데 '미남'이라거나, '씩씩하다'거나,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말들은 당시, 아니 평생 내게 그다지 깊이 와닿지 않았다. 사춘기를 거칠 때도, 군대에 가서도 가끔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는데 늘 그 내용은 한결 같은 미사여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너가 알아서 잘할거라 믿고 있으니 딱히 할 얘기는 없고, 그냥 사랑한다는 얘기를 어쨌든 하려고 하는데 그 말을 또 직접 적기는 도저히 쑥스러우니 알고 계신 모든 미사여구를 편지 가득히 덕지덕지 붙인 것이었다. 어쨌든 사랑한다는 말을 아버지는 본인이 할 수 있는한 최대한 열심히 쓰려고 고심을 하셨던 것이다.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최대한 오랜 옛날로.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침대에 들면 등을 켜고 동화책을 읽어주셨다. 내 기억으로는 영어 동화책이었다. 한글 동화책을 읽어주셨을 수도 있는데, 지금 기억엔 없다. 그렇다고 영어 동화책을 내가 이해했냐면, 그런 것은 아니고 영어로 된 동화책이라는 것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해를 못했어도 내가 그 시간을 아주 좋아했다는 기억은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순간들을 생각했을 때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밀려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나도 놀랐다.
아버지는 동화책을 읽어주시곤 '쭉쭉이'라고 불리는 마사지를 해주셨다. 쭉쭉이는 허술해 보이는 이름에 비해선 놀랍도록 체계적인 마사지로, 늘 똑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목-어깨부터 시작해 팔, 다리 전체를 주무르는 것이었는데 지금 정확한 순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가끔 아버지가 피곤하셨는지 빼먹은 루틴을 정확하게 짚고 반드시 그 부분을 주물러 달라고 징징거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반드시 그 부분으로 돌아가서 주물러주셨다. (아버지는 당시에 실수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 30대 아버지가 된 나는 이젠 그 심리를 알 것 같다. 아무래도 피곤하셔서 내가 넘어가주길 바라고 슬쩍 꾀를 쓰신 것이 분명하다.)
이 쭉쭉이의 정확한 순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확실한 것 하나는 쭉쭉이의 끝이 늘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가 나게 때리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끝났으니 그만 자라는 신호였다. 나는 늘 그 엉덩이 때리기가 아팠으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쭉쭉이가 끝나서 자야되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던걸까, 나를 너무 아기 취급한다고 느꼈던걸까? 아무튼 나는 엉덩이를 때리지 말라고, 싫다고 거의 매번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엉덩이를 때리셨다. 내가 꽤 크고도, 사춘기 때도, 심지어 군대를 다녀와서도 아버지는 가끔 내 엉덩이를 때리셨다. 내가 정말 일관적으로 싫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무려 그 끊기 어렵다는 담배를 끊으신 아버지가 고작 자식 엉덩이 때리는 걸 못 끊으시다니, 하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되짚어보니 이해할 것도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말하기가 너무 어려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해야겠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 최대한 돌려서 한게 엉덩이를 때리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건 딱히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사랑의 표현 욕구가 서툴게 새어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엉덩이를 때리지 말래도 때렸던 것은, 아마 사랑이라는게 하지 말라고 그만하게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드린 것을 계속 하셨지만, 어쨌든 나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완벽하진 않으셨지만, 세상에 완벽한게 어딨겠는가. 나 또한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먼 아들이었다. 신의 관점이 되어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 것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일이 있다고 했을 때, 내가 신이라면 아버지의 점수를 훨씬 높게 줄 것이고 아마 실제 신이 있어 그렇게 점수를 매겼다고 한다면 나는 감히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대신 내게는 또 한번의 기회가 있다. 사실 여전히 아들로서의 기회도 남아있지만, 아버지께는 죄송하게도 내가 더 우선해야할, 내가 아버지로서 역할을 할 기회가 생겼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라면 이해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커피? 그래, 네가 끊으라면 끊어볼게. 피아노? 그래, 듣기 힘들다면 아빠가 못 치는건 인정하니 밖에서 연습할게. 스마트폰? 그래, 보지 말라면 안 볼게. (대신 너도 보지마.)
과연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지금 내 품에 안긴 아기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그건 물론 지금부터의 나에게 달렸다. 아버지는 그 방법을 이미 직접 보여주셨다. 표현이 좀 서툴지라도, 군데군데 실수가 있을지라도, 아이를 꾸준히 사랑하고 믿는 것.
여기에 난 하나를 더하려고 한다. 엉덩이를 때리는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사춘기를 지날 때도, 다 자라 집을 떠날 때도. 늘 변함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