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독립기
올해 7월 나는 주식투자로 자본금 1억 원과 사업 아이템을 마련하고 호기롭게 퇴사했다.
사업 아이템은 투자 블로그 광고수익과 포스팅 내용을 가공한 전자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나의 계좌는 -80% 손실을 기록했다. 그 여파로 20대 1억 벌기 전자책도 세상에 내놓을 수 없게 됐다. 나를 증명할게 수익률밖에 없는데, 그것이 없어졌으니 상품가치도 훼손돼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블로그 광고수입 한 달 5$와 브런치 발행 자격뿐이다.
하지만 나는 취업하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계속한다.
투자자산이 반짝 회복했을 때 나는 희망을 보고 전자책 작성에 다시 힘을 줬다. 그런데 순식간에 그 계획이 주식시장 불황 재개로 무마됐다. 2번이나 나의 능력 외의 변수로 계획이 틀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차선책이 떠오르질 않았고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래서 최근 큰 역경을 극복한 친구에게 고민을 풀어봤다.
2년간 준고시급 전문직 자격증을 열심히 준비했으나 안타깝게도 실패한 친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침체에서 빠져나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교 시절 경력을 살려 경력직 6급 공무원에도 합격했다.
그 친구는 2년간 치열했던 시간을 공백기로 판단하는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굉장히 깊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찾은 답은 결국 공인중개사 자격증이었다고 한다. 자격증이나 경력도 없이 공백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하는 건 제삼자가 듣기에 핑계 또는 궤변으로 들릴 뿐이었다.
친구가 지옥 같았던 시간을 견디며 찾은 답은 두 가지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 되는 책임이다. 내가 만약 전업투자의 길을 간다고 해도 피시방과 라면 비용 정도는 지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모아둔 돈을 고갈시키면서 까지 2년 동안 공부에 매진했던 친구가 심적 고통 속에서 찾은 답이었을 것이다.
이 말에는 백번 동의한다. 내가 1억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때도, 퇴사 후 고정소득이 부족해진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주식이 떨어지면 대응할 수도 없었고 친구들, 가족들과 식사하는 비용도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든든한 고정소득이 부족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졌다. 덩달아 나의 자산도 시간이 부족한 돈이 되고 힘없게 날아가 버린 것 같다. 이런 경우 때문에 기업분석을 할 때도 현금흐름이 튼튼한지 체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시간이 없는 조급한 돈은 엉덩이가 들썩거려 다른 돈을 사귈 시간이 없다. 제일 무서운 녀석은 융자 때 레버리지로 따라온 돈이다. 이 돈들은 원금을 잘라먹다가 심지어 원금의 주인마저 잡아먹으려 한다.
돈의 속성中
우리나라에서 대학, 취업, 직장, 자격증이라는 커리어 없이 맨바닥에서 돈을 벌기는 굉장히 어렵다.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해왔고 무슨 활동을 했다고 설명할 시간에 자격증 하나, 대표 경력한 줄 보여주면 설명이 된다. 친구는 정말 힘들었지만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답으로 자격증을 택한 것이다.
나는 흔들렸다. 퇴사 전 계획을 세웠을 때 6개월간 최소 월 50만 원 사업소득이 없다면 다시 직장에 취업하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현재 5개월간 열심히 무언가 했지만 세상에 증명해 보일 이렇다 할 경력은 없다. 1개월 내로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나는 6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구는 나의 지난 경력에 맞는 미국 세무사를 추천해줬다.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만의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격증을 취득해보라는 것이다.
그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남은 자산이라도 전부 현금화해서 1년간 책값, 강의비, 생활비를 마련하고 목숨 걸고 준비해야 될까 말까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관점 2가지 때문에 그런 결심은 불가능하다.
형은 방사선학과를 전공했다 과거 RI라는 (방사성동위원소 면허) 자격증이 있으면 괜찮은 조건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았다. 형은 대학생활 중 2년간 치열하게 공부해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그러나 졸업반이 다가왔을 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었다. 원자력 관련 업종은 급속히 불황에 들어섰다. 자격증이 있어도 제대로 된 곳에 취업할 수 없게 되자 형은 한국 수력원자력이라는 공기업 취직에 2년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경쟁률이 터무니없이 높아졌다. 원자력 산업 불황에 직원을 감축한 탓이었다. 체험형 인턴까지는 통과했지만 정직원 전형에서는 결국 2년 준비기간 끝에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는 아예 다른 분야 직종의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어떤 일을 긴 시간 동안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는 관심지수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남자아이에게 이 글을 보여준다면 제대로 읽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룡그림책을 보여주면 나는 처음 보는 공룡 이름까지 줄줄이 외울 것이다.
지난 나의 경력을 되돌아봐도 나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경계가 거의 없었다. 주식투자도, 회계 관련 직무도 내가 관심 있는 '돈'이라는 분야에 가장 가까웠다. 그래서 능력을 키우고 실행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덕분에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고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 투자와 관련된 책들을 계속 읽다 보니 '통제력'을 잃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업소득이 아직 미약하더라도 빠르게 관심도가 높은 일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를 감행했다. 투자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나의 직장에 귀속된 8시간 마저 레버리지 한 것이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내가 원하지 않는 범위의 지식도 억지로 습득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장에서 나의 통제를 벗어난 일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나는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세상이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체계에서 독립하기에 도전 중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위험한 조건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의 '관심'이라는 것은 외부의 변수로 정해지지 않는다. 오로지 나의 의지로 정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철없는 망상가나 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 사업소득은 거의 없고 아이템만 가지고 퇴사한다 했을 때 말렸던 사람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도전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과를 만들어내면 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원래 사기꾼과 사업가를 구별하는 차이지 않는가. 약속한 것을 이루면 사업가이고 못 이루면 사기꾼이다.
주식투자도 그렇다. 수익을 내면 고수가 되고 잃으면 그냥 사짜가 된다.
아무튼 나의 생각도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취업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 생활을 보장할 만큼만 버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지속한다. 그래야 온전히 나의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점포 사정 때문에 잘리고 말았다. 나를 증명할 시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져도 되지만, 언제까지 돈이 부족하면 가족들에게 손 벌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한 인식을 심어줄 것인가?
“며칠 동안 남루한 옷차림으로 싸구려 음식을 먹으며 생각해보라. ‘이것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인가?’”
타이탄의 도구 中
나는 퇴사를 하면서 위 물음에 별로 두렵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 자본금이 없어지고, 사업도 뜻대로 풀리지 않자 그런 결심을 한 것도 잊은 채 불안에 떨고 고민에 빠졌다.
친구는 내가 행복해 보이면 상관없는데 방황하는 것 같아서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고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은 고민에 빠져서 갈피도 못 잡을 바엔 차라리 자격증을 따라고 말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고민에 빠지지 않을 만한 '경력'을 만드려고 한다. 더해서 그 일로 아르바이트 이상의 소득도 창출할 것이다.
나는 친구와의 대화와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내 생각을 더 완고히 했다. 더해서 지금 상황을 타개할 만한 사업 아이디어 2가지를 떠올렸다. 이 것을 실행하는 데에는 외부 변수의 방해도 통제력의 결핍도 없다.
한 달 뒤 2가지 사업모델을 실천하고 결과를 가져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