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바람이 논둑을 훑어가면
먼 데서 누가 부르는 듯
허공이 낮게 울었으니
그 소리는 내 어릴 적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주는 것만 같았다.
흙냄새 배인 골목마다
덜컹거리던 우물두레의 숨소리
닭 우는 새벽마다 스미던
차가운 안개 자락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다 떠나
지붕마다 거미줄이 햇빛을 엮고
기울어진 담장 아래
들꽃 몇 송이만
말이 없을 뿐이다
허나 나는 안다.
남아 있는 것보다
떠나버린 것들이
더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을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걸을 때
그때의 나는 더 이상
그 아이가 아니리라
허나 바람만은
옛 이름을 잊지 않고
또다시 불러줄 것만 같아
문득 가슴이 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