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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너희로 생각나게 함이라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62. 너희로 생각나게 함이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노라.』(베드로후서 1:10~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베드로후서 1: 16~21)

~~~~~~~~~~~~~~~~~ 성경말씀 ~~~~~~~~~~~~~~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학식 있는 자처럼 자신을 높이고자 하지 않았다. 또한 주변 사람들도 베드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그들과 동일한 사람으로서 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명령적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고 권유하는 태도로 진리에 대해 말했으며 증거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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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10절)에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글에서의 결론적인 의미를 전하고자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한다.”(8절)는 말씀에 대한 이유나 결과를 추가하는 것이 된다. 진리를 제대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함은 너희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배하는 예식을 중시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삶과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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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말씀은 모여 예배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가는 신앙생활과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힘쓰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부르심’과 ‘택하심’이란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말함이며, 성령이 이에 관여(關與)하여 깨닫게 되어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을 말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됨은 인간 스스로 인함이 아니라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교통함을 가질 때에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길은 성령의 운동(역사)이 그 안에서 일어날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른 대변자나 어떤 기물로나 어느 장소에 의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다. 몸에 성물을 품고 산다고 은혜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성지에 가야만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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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굳게 하라.’고 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깨어 있어라.’고 하는 말과 같다.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10절)에서도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는다.’라고 베드로 사도는 말했다. 이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지키는 삶을 말한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지키려면,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 온전히 깨닫고자 하는 믿음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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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15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떠난 후에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본문 16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다. 자신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늘 생각하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너희들도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도록 이런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무엇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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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이라는 것이다. 교인이 교회에서 설교를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를 알게 한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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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라고 했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복수로 ‘우리’라는 말을 했다. 이는 베드로 사도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도 함께 변화산상(마태 17:1)에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거기서 베드로 사도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을 나누시는 예수를 보았고, 그때에 예수님은 변화 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마태 17:2)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때에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크신 위엄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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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는 이 장막을 떠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언에 대해 각양각색으로 해석하려 들 것이며,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듯이 이제나 저제나 온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것과 그런 소리를 주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깐 예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주의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인지를 살피라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체험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지켜서 허황된 소리를 주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했다. 이는 어둠에 비추는 등불 같다고 했다. 애매한 예언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참 예언은 확실함이 있다는 것이다. 등불이 어둠을 비추듯이 예언도 그러한 것이라고 한다. 이단이나 거짓 예언자들은 애매한 예언으로 떠든다. 이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서, 날이 샌다는 것은 때와 시기가 있음을 말한다. 샛별은 내가 찾아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샛별이 스스로 자태를 드러낸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데까지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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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참으로 길어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과 교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이삭이 해 질 녘에 묵상하듯이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반면에 교회에 출석을 열심히 하지만 성경말씀보다는 설교말씀에 있는 사람이 교인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천국비유 중에, 양과 염소를 비유로 쓰신 이유도 그러함에 있기 때문이다. 양도 염소도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아는 부류이다. 하지만 다름을 알 수가 있겠다. 물론 사람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개나 돼지를 비유하신 것이 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태 7:6)에서 말이다. 즉 부르심이나 택하심을 받지 않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진리나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도, 알고자도 아니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하는 자를 찢어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너희로 알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놀라운 것은 베드로 자신도 역시 예수님이 알게 하신 것을 늘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즉 말씀을 깊이 묵상을 하였다는 셈이다. 무슨 말씀일까?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서 물세례를 받은 후에 하늘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또 거룩한 산 위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대화를 하던 중에 감격을 받은 베드로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지었으면 했을 때에 하늘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을 잊지 않았다는 셈이다. 이처럼 사도들이 전한 말씀으로서나 신앙생활 중에 성령으로 알게 된 것들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것이다. 즉 그것을 생각하며 믿음을 굳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되겠는가? 이리 와 늑대가 달려와 먹이를 삼키듯이 너희의 믿음을 삼켜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예수님도, 베드로 사도도 그리 말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됨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는 은혜, 확실한 진리를 생각나게 하사 믿음을 굳게 지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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