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후서 2장 20절~22절)
~~~~~~~~~~~~~ 성경말씀 ~~~~~~~~~~~
더욱 두려운 말씀은,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20,21)의 말씀이다.
이긴 자의 종이 된 자들, 저희들이 만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미혹되어 그중에 얽매이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는 것이다. 또는 의(義)의 도(道)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났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세상을 살다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다가 미혹되어 악의 종이 되어 죽었다면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는 한 때에 교회를 다니다가 떠난 사람이 교회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다가 나중에 믿게 되는 사람보다 매우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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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21절)의 말씀에는 ‘의의 도를 안다’는 말에는 깊이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없는 인지(認知)를 말하는 것이다.
석가의 제자들이 석가의 도를 잘 알지 못하여 도의 그림자만을 전하는 것도 석가는 염려했던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바라본다는 석가의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것을 말한 것이다. 결국 석가는 제자들의 행적을 미리 보았던 것이다. 만일 석가의 제자들이 석가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보다 더 진리에 가까이 접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불교는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 창조주를 만나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진리는 모든 길에서 만나며, 진리는 어디든지 있다는 것도 진리의 가르침이다. 만일 진리가 극한 된 곳에만 있다든지 한다면 진리의 모순이 되는 것이다. 진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말하는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 또는 계율이나 율법을 저버리는 것은 속담에 나오는 개가 자기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다든지, 깨끗이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돌아가는 돼지와 같다는 것이다. 이는 개와 돼지는 이성 없는 짐승들인 것이다
그러니 의의 도를 알고도 거룩한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자들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복음을 그저 듣고 맹종하는 믿음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이 주신 이성으로 복음의 뜻을 깨달아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 있어라/ 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 말씀/ 최희원 글>
오늘의 말씀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 같다. 복음을 듣고 받고 믿는다는 교인(교회를 다니는 분)들 중에 나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대학시절에는 철학을 깊이 탐독을 해왔었다. 얼마나 철학을 좋아했는지 주변에 가까운 친구들은 알았을 것이다. 가난의 생활에서 겨우 안전된 삶이 되었지만, 철학에 대한 매력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별명이 ‘개똥철학자’였었다. 한때, 니체와 칸트의 철학에 빠지기도 했었고, 동양철학에도 빠지기도 했었다. 처음에 철학에 빠지기 전에는 매우 가난한 시절에 나를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도예스코프의 「죄와 벌」과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나의 사상에 기본적인 철학인 셈이었다.
동양철학으로는 「주역」과 노자의 「도덕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철학을 좀 안다고 교만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교만이란 마음에 품은 적이 없었다. 직장생활에서도 높아지려고 한 적이 없었고, 사람들 앞에 내세울 자랑걸이도 없었다. 주로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자연의 비밀에만 관심이 많았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지인들 중에는 나를 시기하며, 대화 중에 ‘꽤 아는 척을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침묵으로 돌아갔다.
하물며 불교인 친구들도 “불교신자도 아닌데 어떻게 석가에 대해 많이 아느냐?”라고 묻기도 했었다. 내가 불교를 알고자 했던 것은 다도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그 당시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핍박하였으며, 절에 차나무를 기르지 못하게 하였었다. 그런데도 산중에 절에는 몰래 차나무를 조금 심어서 차를 마셨던 것이었다. 불도(참선)에는 차가 짝꿍이었다. 불교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차(茶) 문화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의 차를 즐겼으며, 조선의 차(茶) 문화를 무시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스님과 차를 나누기도 했었다. 등산길에 하산할 때에는 한적한 절에서 스님과 다담(茶談)을 가지기도 했으며, 서울에 있는 조계사에 있는 산중다원에서 스님과 다담(茶談)을 가졌었다. 이때에 석가모니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문헌들도 많이 찾아 읽었었다. 하물며 인도여행 중에 석가의 흔적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 당시에 이미 인도에서는 모든 종교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뉴에이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었다.
이러한 나에게 어찌 흔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가졌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거리마다 통일교의 교리강좌가 많았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나에게는 통일교의 강좌가 매우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물리학계에 유명한 물리학자들 몇 분이 통일교에 등록되어 있음에도 놀랐다. 그 당시에 깨달은 것은, 통일교는 기독교와 주역의 혼합종교였음을 깨달았다. 그럴 수밖에, 순수이성비판으로 유명해진 칸트도 동양철학을 접목했던 것으로 유명세를 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칸트를 버렸다.
이처럼 오만했을 나였지만, 그 외에 썬다싱과 월츠만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창조자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그 대표적인 성경의 말씀이, 요한복음 8장 32절, 「너희는 진리를 알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해 줄 것이다.」이 말씀은 내게 빛을 보게 한 것이었다. 이 말씀은 날로, 날로 나를 새롭게 깨우쳐주었다. 이때부터 「진리」를 알고자 했으며, 진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으며, 진리로 천지의 비밀을 깨닫게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라.”의 놀라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룩’이란 단어의 의미를 유교적으로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를 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린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린 교인, 그들은 의의 도를 안다 하지만 깨닫지 않았기에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기에 세상 미혹의 길로 갔던 것이다. 이들은 이미 사단의 불화살을 맞은 셈이 된 것이다. 즉 이성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고 만 셈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