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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65.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세,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태 28장 8,9,10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한 20장 19~22절)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누가 24장 36절)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 20장 26절)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편 4편 8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편 29편 11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 4장 7절)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후서 1장 2절)

~~~~~~~~~~~~~~ 성경말씀 ~~~~~~~~~~~~~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In this place I will grant peace)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열방들이 평화를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회담을 하고 있다. 특히 ‘평화’(Peace)가 국제적 개념으로 보편화된 현대시대에는 유행어처럼 일상화가 되어있다.

그러나 평화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상당히 많은 인간들은 자신만의 평화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평화를 저울로 달아본다면, 영점을 가리키기보다는 자신의 무게에 더 힘을 쏟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또는 평화협상을 보면, 마치 시장경제의 원리처럼 거래적인 평화를 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수많은 저명인사들이나 지식인들도 ‘평화’에 대해 말해왔다.

“평화는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은 히틀러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발발한 세계 2차 전쟁을 겪으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유럽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레이건은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힘에서 나온다.”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나 혁명가들이 자주 쓰던 ‘평화’와 ‘자유’에는 반드시 그 뒤에는 무서운 칼이 숨어 있었다. 즉 ‘정의 칼’이란 명분으로 수많은 인간의 피를 뿌렸던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평화와 자유라는 명제가 인간의 양심의 공감(共感) 심리에 의해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등장하여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평화와 자유는 보편적인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은 전체주의, 인본주의에 뿌리를 둔 인간을 지배하는 목적이나 수단의 정책에 지나지 않았다. 즉 평화와 자유는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중심의 사상과 이념 안에서 부르짖는 ‘평화’와 ‘자유’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할지라도 천만다행으로서 민주주의 이념으로 한, 인간존중의 정신과 자유와 평등을 기본권으로 하는 민주정치의 원리를 바탕으로 국가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인류역사의 변천 속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평화와 자유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인류를 이끌어왔다는 것에서, 놀라운 경이를 가지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래서 어떤 지자(智者)는 인간의 근본은 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는 인간은 선을 향하고자 하는 양심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사회 속에는 누구나 느끼는 현실 속에서는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하고 참사의 소식을 듣기도 하였던 것이었다. 지금도 현실에서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인간의 극악한 행동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또는 선악의 두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또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이다.

이러한 인간사의 모든 것, 비극과 불행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속에서 추구하는 행복과 평안 그리고 자유는 끝없는 인간의 과제였던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인생사의 희로애락은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도 많다. 그리고 그런 존재라고 하면서 끝없이 저항하고, 발버둥 치며, 자신만의 평강과 자유를 유지하고 지키려고 함으로써 선악의 약초를, 만민이 통하는 화폐나 코인에 눈이 멀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잠시 자연을 바라보면, 결코 이러한 인간의 잔악함, 교만과 탐욕에 의해서만 세상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된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왜 이런 말이 존재할까? 단지 위안받기 위해서? 아니면 비굴한 핑계?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류역사에서 수긍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성경에는 말해주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도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할 뿐이라고 말이다. 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말이다. 이처럼 세상이 인간에 의해 막돌아갈 것 같아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그토록 추구하는 평화와 자유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즉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그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운동과 목욕을 겸하여 YMCA로 가는 중에 날씨는 흐렸었다. 이처럼 늘 내 마음엔 평안하지 못했다. 국제정세나 인간사회 그리고 자연의 이변 등에서도 늘 마음은 편치 못했지만, 그 외에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기에 마음에 평안이 이루어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운동하러 가던 중에 갑자기 마음이 평안함을 느꼈다. 바라보이는 것이 평안하고, 생각에는 평온함, 그리고 마음에 평정이 찾아왔다. 간밤에 꿈이 사나워서 불안했었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내 운동화가 사라졌다. 뭔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내게 갑자기 평안함이 충만했다. 운동 후에 목욕을 하면서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지금 내게 평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평화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임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그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불안의 요인이었던 하마스의 수장을 제거해 주심으로 평강을 이루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평화는 인간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역사를 살펴보았다. 다락방에 꼭꼭 숨어 문을 잠겨놓은 채로 불안해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는 나타나서, “너희는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 것은 곧 불안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솔로몬 시대에도 열방에는 평화로웠었다. 그래서 열방의 왕들이 솔로몬을 찾아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지혜를 구했던 것이었다. 지금 세계 이차대전이 끝난 지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에 국제정세는 그런대로 평화로웠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합리적인 이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잠시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들과 산을 바라보며,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가? 참 평화는 천지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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