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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stwons Jun 21. 2024

무더운 여름

[맴 할아버지의 동화 편]

무더운 여름    


바람 한 점도 없는 한 여름이었다. 하늘에 구름도 ‘어름 땡’ 한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다. 

  느티나무 그늘아래에 정자에서 맴 할아버지는 연신 손부채질에 여념이 없으셨다. 예전 같았으면 바람이라도 불어와 얼굴과 턱밑으로 시원함을 안겨주었건만, 오늘은 지독하게도 더운 열기만 짓누르고 있었다.

  맴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채질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뜨거운 날씨에 소나기라도 좀 뿌려주지 하면서 맴 할아버지는 하늘을 자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에 멀리서 동찬이와 칠석이가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를 본 맴 할아버지는 눈이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 화풀이라도 할 때가 없나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음,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무더운데 숨통을 터줄 놈이 안 오나 했건만........ 역시 똥찬이 밖에 없지.”     


  맴 할아버지는 점점 다가오는 동찬이와 칠석이를 계속 주시하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맴 할아버지를 발견한 동찬이는 칠석에게 손짓하고는 맴 할아버지 쪽으로 방향을 틀고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맴 할아버지에 가까이 이르자 동찬이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는 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맴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무지 덥지요. 매미조차 울지 않네요!”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칠석이도 동찬이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정중히 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맴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젊은이에게 인사를 받으셨다. 그리고는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시면서 그늘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너희들은 덥지도 않니?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니니 말이다.”

“더워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시원해요. 이 더위에 맴 할아버지는 어찌 나오셨어요?”

“내가 어디 갈 때가 있냐? 여기 밖에......... 그래도 너희들이 와줘서 고맙지.”

“이제 아셨어요? 우리가 얼마나 맴 할아버지를 걱정하는지 모르시죠?” 

“똥찬이, 넌 왜 날 맴 할아버지라 부르냐?”

“똥찬이가 뭐예요?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있으면 맴 맴 소리에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면서요. 그래서 맴 할아버지라 불러도 된다면서요? 이제 와서 왜 그려서요?”     


  동찬이는 심통이 났다. 맴 할아버지라 부르면 좋아하시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 하시는 거야 하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동찬이의 어깨를 툭 쳐다. 그러자 동찬이도 칠석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치 우리 사이는 이 정도야 하는 눈빛이었다.      


“맴, 맴 할아버지~ 오늘 무지 더워요. 시원한 이야기 하나만 해줘요.”     


  동찬이는 할아버지의 부채를 낚아채어서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부채질을 열심히 하며 말했다. 맴 할아버지는 옷깃을 족집게처럼 집어올려서 흔들며 유유히 흐뭇한 표정을 하였다.      


“그럴까? 오늘은 무더운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까?”

“네! 무더운 여름? 어떤 이야기예요?”     


  동찬이와 칠석은 자전거를 그대로 두고 맴 할아버지 코앞에 다가앉았다.  맴 할아버지는 양손을 허리에 대고는 팔꿈치로 두 친구를 툭 밀쳐내면서 말했다.       


“이 한낮에 무서운 이야기는 재미가 없을 거고 하니, 한 소년에 대해 이야기해 주마~”

“어떤 소년이에요?”     


  이때에 갑자기 느티나무 가지들이 요란하게 흔들었다. 마치 맴 할아버지가 할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뭐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지.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지.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기만 해도 곧바로 시골의 풍경이었지. 사방이 온통 논과 밭뿐이었지. 그리고 좁은 신작로 길 양쪽으로는 플라타너스들이 일렬로 높이 뻗어있었단다. 그리고 마을이라 해봐야 서넛 대뿐이었어. 그것도 초가집뿐이었단다. 지금은 도로가 넓어서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버스도 자주 지나가고 그러지? 그리고 여기저기 멋진 양옥집들이 옹기종기 모여들 있지?  그때는 말이다. 시외버스가 하루에 한두 번 지나갈 뿐이었단다. 주로 소가 끄는 수레가 교통수단인 셈이었지. 

  그러나 그때에도 여름은 오늘이나 마찬가지란다. 이때쯤이면 무지 더웠지. 논두렁길 사이에 흐르는 물에서 아이들은 물놀이하며 놀았단다. 그리고 소쿠리를 들고 나와서는 논두렁 물가에 풀들을 헤치며 소쿠리를 집어넣고 흔들어대면 미꾸라지가 여럿 마리씩 걸려들고 그랬단다. 그때는 말이다. 남자아이들은 옷이 젖으면 부모님께 혼난다고 훌랑 벗어 논두렁에 던져놓고는 고추를 달랑달랑 흔들며 물속에 몸을 담근 채로 두 손을 저어가며 놀았단다. 그러면 손에는 조개랑 소라 등이 잡히지. 그럼 신난다고 소쿠리에 가득 담아서는 논두렁 위에 올라와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냄비를 놓고 소금물에 팔팔 끓어서는 쩍 벌린 조개를 힘껏 제쳐서 속살을 먹는 거야. 소라는 꽁무니를 깨고 입구를 입에 가져가 힘껏 빨면 속살이 속 나온단다. 그러면 서로 혀를 내밀어서는 보라는 듯이 자랑을 하며 먹는 거였지.」     


“누가 그런 걸 먹어요? 더럽게~ 그냥 가지고 놀다 버리지.......”

“똥찬인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지? 끝까지 들어봐!”     


「그렇게 놀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르지. 어둑어둑 해져야 자리에서 일어나 소쿠리와 냄비를 들고 집으로 가지. 그런데 한 소년이 있었단다. 이 소년은 남자아이들이랑 함께 놀지 못하고 늘 혼자서 논단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는 아버지는 새 장가를 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지내고 있었단다. 소년의 외할아버지는 한때는 잘 살았단다. 그런데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한성에서 술집 여자랑 살고 있단다. 가끔 집에 오면 돈을 달라고 행패를 부리고는 결국엔 논의 일부를 떼어내어 팔아서 돈을 챙겨가고 그랬지. 둘째 아들은 형의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아서 땅문서를 자기 이름으로 옮겨 놔 달라고 성화였지. 결국에는 부모는 논밭의 문서를 둘째 아들의 이름으로 옮겨 놓고 말았지. 

  그러자 둘째 아들은 부모를 잘 모시고는 마을 어른이 소개해준 여인과 결혼하여 잘 살았지만 자식이 생기기 않았지. 그래서 늘 아내를 구박하고 그랬단다. 그렇게 구박을 받으며 지내온 아내는 아들을 낳게 되었지. 하지만 몸이 많이 망가져서 출산할 때에 결국은 회복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이를 딱히 여긴 부모는 손자인 아기를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동냥을 해가며 키웠단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자기 아들을 맘에 들지 않았어. 아내를 잡아간 놈이라고 구박을 했단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부모는 손자를 감싸기 시작을 했지. 결국 둘째 아들도 새 장가를 간다는 핑계로 도시로 떠나가 버렸지. 그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라도 잘 키워서 조상님을 뵐 면목이 되었으면 했단다. 

  그렇게 자란 소년은 동네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 동네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집으로 와서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그랬지. 어떤 날은 소년은 할아버지를 따라 논밭에 가서는 논두렁에 앉아 넓은 논밭을 바라보기도 하고, 논두렁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는 하늘에 구름을 바라보기도 했단다. 이런 손자의 모습을 할아버지는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단다. 

  어느 날, 무지 더운 여름날이었단다. 논에는 벼들이 많이 자라 있었지. 소년은 논에 우뚝 서있는 허수아비를 자주 찾아갔었단다. 그리고 허수아비랑 무슨 이야기인지 혼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단다. 아마도 그 소년에게는 허수아비가 유일한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지. 

  날씨가 무척 뜨거운 한낮에는 농부들이 일손을 놓고는 다들 집으로 돌아갔지. 그러면 소년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난 것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신나게 놀았단다. 그렇게 땀을 흠뻑 흘리면서 뛰어놀던 소년은 논에 홀로 서있는 허수아비에게로 다가갔지. 그리고 허수아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단다. 소년은 무더운 날씨에 흠뻑 젖어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 

  소년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내지 않은 채로 허수아비를 쳐다보고 있었단다. 그리고 소년은 허수아비에서 뭔가를 발견한 거야. 이 뜨거운 땡볕에서 허수아비는 하나도 땀을 흘리지 않는 거였어. 그런 허수아비를 소년은 오랫동안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허수아비! 넌 덥지 않니? 어째서 너의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지 않니? 그렇게 긴 팔을 입고 양팔을 벌리고 있는 거야? 팔이 안 아파?”     


  소년은 그렇게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이 말을 했단다. 먼 산을 바라보던 허수아비는 양팔을 좌우로 흔들더니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어. 소년은 허수아비의 손을 잡아주었지. 그랬더니 허수아비는 소년을 번쩍 들어 올려서는 자신의 어깨 위에 앉혀놓은 거야. 소년은 허수아비의 어깨 위에 앉아서 허수아비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보았지. 그러자 어디서 불어온 건지 바람이 불어와 소년과 허수아비를 맴돌며 하늘로 올라갔지. 허수아비와 소년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거야. 그리고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지.     


“와~ 우리 마을이 다 보인다. 저기 우리 집이 보이네. 아~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뭘 하시네? 할아버지!”     


  소년은 두 손을 입에 모아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듣지 못하였지. 소년은 여기저기를 열심히 살피며 바라보고 있었단다. 동네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는 모습도 보고, 송아지와 달구지가 지나가는 것도 보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마시고 있는 모습도 보고, 산 넘어 다른 마을들이 보였지. 소년은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었단다. 그런데 마을들이 이곳저곳마다 모여 있는 것을 보았지. 소년은 알게 되었지. 산 넘어 마을들이 있다는 것과 넓은 들판에 논밭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소년은 언젠가는 아버지를 찾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였단다. 그때에 구름 너머로 한 여인의 모습을 소년은 보았단다. 왠지 어머니일 거라는 걸 생각한 거지.     


“아~ 어머니!”     


  그러자 구름 너머에 어머니는 소년에게로 날아와 소년을 품어주었단다. 소년은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로 잠이 들었지.

  이때에 마을 사람들이 논에 있는 허수아비에게로 몰려왔어. 소년이 허수아비의 품에 안겨 잠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거지. 소년의 할아버지는 급히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 그리고 허수아비에서 소년을 받아 내리려고 하자 이미 소년은 숨이 멈춰있었고, 잠자듯이 평안한 모습이었단다. 마을 사람들도 놀랐지. 어떻게 소년이 허수아비의 품에서 잠자듯이 숨이 멈추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소년을 허수아비 곁에 고이 묻어주었단다. 

  무더운 여름날만 되면 그 허수아비 곁에 작은 소년의 무덤 위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와 맴돌며 하늘로 올라가고 구름이 만들어지게 되었단다. 마을 사람들은 그 현상을 바라보며 소년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단다. 이상 끝.」     


“할아버지! 이야기가 너무 슬퍼요.”

“그래 너무 슬프지? 무더운 여름이 되면 땡볕에 홀로 있는 허수아비를 생각해 봐!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 않니? 더운 바람이 불어와 허수아비 주위를 맴돌며 하늘로 올라가는 거야. 이런 바람을 우리는 뭐라고 하는지 아니?”

“뭐라고 하는데요?”

“회오리바람이라고 부르지.”

“맞다. 저도 본 적이 있어요. 바람이 빙그르르 돌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 말이에요.”

“그럼, 무더운 여름날에는 바람도 없을 때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어디서 왔는지 바람이 불어와 품어주듯이 맴돌며 하늘로 오르게 되는 거야. 그때에 소년이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이 천사들도 사랑하는 영혼을 품어 함께 하늘로 간단다.”

“와우! 이젠 회오리바람을 유심히 살펴보고 싶다.”

“그래, 그래, 오늘은 이만 하자! 덕분에 더위를 잊었지?”

“네! 맴 할아버지 만세!”     


  어느덧 해가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가시게 해 주었다. 맴 할아버지도 동찬이도 칠석이도 느티나무 정자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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