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ustwons Jun 22. 2024

참다운 관계론

[특글]

참다운 관계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관계가 시작되었다. 빛이 있으라고 명령했을 때에는 시간과 공간이 드러나면서 낮과 밤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물을 나뉘었을 때에는 하늘과 땅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땅에는 식물을 종류대로 내시니 대지에 관계가 시작되었다. 하늘 궁창에 광명체를 내시니 우주에 징조와 계절과 날과 년으로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을 내시니 해는 낮을 달과 별들은 밤을 주관하는 관계가 시작되었다. 또한 바다에 생물을 육지에 짐승을 하늘에 새들을 내시니 천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므로 남녀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시작되었다.

   특별히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서 천지를 다스리는 관계를 이루게 하셨다. 이때부터 사람은 자연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관계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담과 여자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이루게 하셨다. 즉 남녀의 관계를 이루어지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관계는 이러하다.

  

  첫째로는 사랑의 관계를 이루게 하셨다. 

  둘째로는 존중의 관계를 이루게 하셨다.

  셋째로는 인생의 관계, 즉 삶의 관계를 이루게 하셨다.     


   이러한 관계는 인간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까지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있어서도 그지 나누어 본다면, 사실 분리하고 구별하고 나누는 인식은 진화론적인 사고의 기본적인 틀이다. 그러므로 나누고 분리하고 구별하는 사고에는 관계의 창조적 원리에 부작용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 구별한다고 하면, 생명적인 관계와 무생물적인 관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첫째로써, 생명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근본이 사랑에 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창조자 하나님은 근본이 사랑이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 7,8)


   그러나 아담과 첫 여인이 에덴동산에서 떠난 후에는 첫 번째 아들인 가인으로부터 사랑을 가리는 질투와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인간관계를 손상시키고 그릇된 관계로 번져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천만다행으로?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을 등진 인간에게서 일어날 것들을 다 아셨기에 여성 안에 생명을 사랑하는 힘을 주었다. 그 사랑의 힘이 여인의 자녀에게로 모성애(母性愛)로 심김으로써 인류는 존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성애를 통해서 가정의 관계가 이루어지며, 형제의 관계와 남녀의 관계와 이웃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국가관, 국가의 이념의 뿌리는 시날 평야에 한 국가를 이루었던 영웅 니므롯의 사상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생물적인 관계, 즉 물질적 관계에 있어서는 뉴턴의 만유인력(萬有引力)이란 놀라운 물리적인 법칙에서 잘 설명이 되고 있다. 질량이 있는 것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이러한 만유인력의 힘은 물질적 관계에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적 관계를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심어놓은 것이다. 


  첫째로써, “빛이 있어라!” 에서 어둠과 밝음이 나뉘었고, 시간과 공간이 나타났으며, 하늘과 땅을 내시며,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물질이 형성되는 관계와 물질상호관계에 있어서도, 뉴턴은 만유인력의 관계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만유인력의 법칙은 물질의 존재를 유지하게 하는 힘인 것이다. 


   물질의 관계에 있어서 재밌는 것은 진화론적 사고방식으로 보는 것과 창조적 사고방식으로 보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첫째, 진화론적 사고방식으로 보는 물질의 관계에는 물질을 쪼개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상태를 원자라 칭하고는 물질의 구성입자는 원자로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을 이루는 기본 성분은 원소, 원자, 분자, 홑원소물질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가 원자까지 쪼개게 되어 핵과 전자로, 핵을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해석하고, 그런 후에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쿼크와 렙톤이라는 기본입자가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물리학에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물질에 대한 개념으로서 질량이 있다거나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만으로는 물질을 정의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여 기본입자를 이루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된 양자역학이란 신학문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증명도 보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집단적 공감이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어 아인슈타인은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놀라운 지적을 했다. 그러자 과학계에서는 아인슈타인을 왕따 시키며 비이성적인 인물로 취급하게 된다.     


   둘째. 창조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는 물질의 관계에서는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에서 잘 표현되는 것으로써 모든 물질에게는 다양한 힘의 관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양한 힘이란 여러 힘을 말함이 아니다. 뉴턴도 말했듯이 또한 아인슈타인도 알고 있듯이 한 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통일장의 이론을 생각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실수는 휜 공간의 개념인 것이다. 물론 휜 공간이론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감탄을 했으며, 중력의 이해와 빛의 휨 등으로 이해를 했었다. 즉 휘어진 시공간의 이론(기륜원리-Giryun Principle)으로 진화하는 과학계에 움직임이 되었다. 


   만물이 구성하고 있는 힘(力, power)은 창조자 하나님의 사랑의 힘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성경의 말씀은 이러하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며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 해체되고, 그 구성 물질들이 불에 녹아 버릴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2)

「그 환란의 날들이 끝나자마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을 것이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마태복음 24:29)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가 한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Heaven and earth will pass away, but my words will naver pass away.]」(마태복음 24:35)     


   이처럼 창조자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심에 만물이 이루도록 구성력을 주셨으며, 또한 최후의 날에는 그 구성력을 풀어내신다는 것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적 의미인 것이다. 하물며 만물의 관계에서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인간관계나 만물의 관계에서나 모두 창조자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붙들지 아니하시면, 즉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기 때문에 천지만물들이 존재하며 관계의 긴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생각한다면, 인간의 관계, 인간관계에는 사랑의 관계와 존재적 관계와 상호적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하신 말씀, “참으로 보기 좋았다.”[It was very good to see.]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홀로 있는 것에 그를 돕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음을 아시고, 그가 잠든 후에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그에게로 데려오셨다. 아담은 그녀를 여자라 불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 아내와 결합해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라고 모세는 부연설명(敷衍說明)을 했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창조된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구절인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은 그 모든 창조세계를 인간에게 맡기시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창조자의 뜻을 따라 창조세계를 다스리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뱀이 말한 대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려서 너희가 선과 악을 아시는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에서와 같이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인간의 세계는 항상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즉 사랑으로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교만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의 관계가 아닌 지배관계로 세상은 움직여갔던 것이다. 그래서 남녀의 사랑에도 위아래가 있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있고, 군림하는 사랑을 하기 때문에 눈물의 사랑이니, 고통의 사랑이니, 수많은 사랑에 대한 애한(哀恨)들이 많이 쏟아놓았다. 

   이처럼 관계의 그릇됨이 얼마나 고통을 안겨주는지를 인간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에게 어떠한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모든 고통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떤 모양이라도 고통을 안겨주었다면 그분은 절대로 올바른 심판을 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신들은 인간들이 상상해서 만든 신들이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신, 인간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신, 인간에게 조건을 제시하며 거래하는 신, 이러한 신들은 모두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신들인 것이다.      


  ‘참다운 관계란 선하고 의로우며 평화로우며 사랑이 다스리는 관계로써 온전함을 이룬다.’     

작가의 이전글 무더운 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