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하나님은 인류 전체의 하나님이지만, 바벨탑과 최후의 날 사이에서는 어떤 하나의 신앙도 인류 전체의 신앙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을 때,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하나님을 추구하는 행위도 존중하고, 문화의 특수성과 인간조건의 보편성을 화해시키는 길도 열린다.
이는 하나님이 유대민족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렸지만, 노아 율법이 아닌 이러한 명령은 보편적인 것이 아님을 뜻한다. 너무나 자주 간과되곤 하지만 절대성과 보편성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나는 내 아내에게 절대적인 의무를 지고 있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의무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비보편성과 특수성이야말로 어버이다움(parenthood), 즉 모든 아이가 아니라 바로 이 아이의 특별한 인연의 끈을 맺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요인이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런저런 유형의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애정이 아니라, 유일한 어떤 한 사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다. 인간 일반이 아닌 특별한 어떤 사람에 대해 절대적인 헌신과 의무를 느끼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성의 핵심에 자리한 것이다.
<차이의 존중-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조나선 색스 지음>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보편성과 획일성으로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창조주의 진리는 보편성보다는 특수성과 비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에서도 절대적인 관계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여호와도 그렇고, 유대민족과 하나님도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특별한 어떤 인간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임을 말이다.
또한 부모의 헌신과 자녀에 대한 사랑도 비보편성인 인간성의 핵심을 말한다.
인간세상의 통치수단에는 매우 교활한 방법으로써, 그들은, 즉 통치자들은, 또는 스스로 지식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보편성으로 인간을 다스려야만, 반면 그들만은 특별한 존재로써 구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이니 사회주의이니, 자본주의이니 공산주의이니 하는 사상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또는 자유와 평화를 매우 잘 활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인류역사 속에 독재자로 군림했었던 인물들도 역시 자유와 평화를 잘 활용해 왔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중심리와 인류애에 반하지 않는 정략으로써 인간들을 다스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예를 살펴보면, 이씨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써, 인간의 가치에 대해, 인간의 예법에 대해, 인간의 근본도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상과 이념들을 생산해 왔던가? 그러면서 조선사회는 다스리는 양반과 다스림을 받는 천민으로 이원론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도 봉건사회나 노예제도에 있어서도 역시 이원론적인 의식 속에서 인간들은 존재되어 왔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양반과 천민의 이원론적 가치관, 인간과 인간유형의 노예의 이원론적 가치관이 지배해 왔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오늘날, 문명의 시대라 하는 기술문명의 시대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더욱더 심화된 이원론적 가치관이 보편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현상을 하나를 찾아본다면, 인간들이 보편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유행성이나 특정인물 추종집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걸 아는가? 세속화된 인간의 보편성이란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가? 그 좋은 예화가 바로 동물농장을 예로 들 수가 있겠다. 또는 한때에 화제가 되었던 ‘눈먼 도시’란 소설이나 영화가 있었다. 이는 현대인간사회를 잘 표현한 소재였다. 예수도 그렇게 말했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한 9:41)
즉 문명에 눈이 먼 인간들은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된 의식 안에서만 볼뿐이란 것이다. 그 보편화된 의식이 무엇인 줄 아는가? 초기에, 노아홍수 직후에 인간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한 후에 그들에게 보편성으로 뭉치게 하였던 것이다. 누가? 영웅 니므롯의 막강한 힘에 의해 보편성을 받아들이도록 했던 것이다. 그 보편성을 바탕으로 그들은 다시는 물로 인한 멸망을, 물의 심판에 대응하는 목적을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들의 보편성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을 하늘에 닿게 하여 그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막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역시 하나의 지구촌, 하나의 국가, 하나의 문화, 하나의 문명, 하나의 종교, 하나의 사상으로 뭉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함에 있어서 개인의 가치와 존귀를 부여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특히 인간에게는 특별한 존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획일성과 보편성으로 인간을 창조하였다면, 인간의 가치나 존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좀 이해를 돕고자 한 예를 들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보면, 인간이 그런 제품화된 존재와 같이 된다면, 어찌 개인의 가치와 존귀가 있겠는가? 반면에 획일성과 보편성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기초적인 의식은 진화론적 사상에서 흔히 볼 수가 있겠다. 모든 종의 동식물의 분류에 있어서 개체보다는 집단화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사고방식에는 개인의 가치와 존귀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보편성을 강조한다. 그래야만이 군중심리와 집단주의 그리고 절대주의와 숭배의식을 활용한다.
이제 좀 이해하는가? 보편성에 숨겨져 있는 사악함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이는 곧 특별한 존재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가? 창조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유일하게도 인간을 창조할 때에는 손수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으며, 친히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인간은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특권까지 주셨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원한 존재로 세워주신 것이다. 또한 배반한 아담의 후손들에게 존속된 개인의 가치와 존귀에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로 개입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가? 이 땅 위에 어떤 인간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한 특별한 존재를 빼앗거나 파괴하거나 간섭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인간이 악의 힘으로 인간을 각양각색으로 파괴하고 빼앗고, 온갖 간섭으로 두려움과 고통을 의식하도록 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악한 인간들, 뱀이 아담에게 말한 이념에 따라 끝없이 인간의 특별한 존재를 무너뜨려 보편성(普遍性)과 일반화(一般化)로 격하시켜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특별한 존재일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존재, 그것은 간단하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정하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여호와(야훼), 그리고 선지자들과 예수의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 계심을 믿는 마음을 갖게 하신 것이다. 어떤 마음일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되도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태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