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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stwons Jul 13. 2024

76. 천하를 얻고도

[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76. 천하를 얻고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모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What good will it be for someone to gain the whole world, yet forfeit their soul? Or what can anyone give in exchange for their soul?](마태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마가 8:36,37)



   사람이 하는 짓 중에 가장 사악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람을 천하게 여긴다거나, 사람의 존귀함을 제거하려는 짓일 게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악한 행동은 무엇일까?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일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무시하신 적이 없으시다. 

  반면 인간들은 수없이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쉽게 행한다.   왜 이토록 인간을 무시하는 행동을 쉽게 많이 하는 것일까?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남을 무시하는 상황을 살펴보면, 질투와 교만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돈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 이 말은 실은 일제식민지 때에 조센징을 비양 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여전히 현대에 와서도 자랑스럽게 이 말을 던지는 인간이 있다. 마치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조선시대에서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유럽의 봉건사회에서도, 흑인노예 매매하던 시대에도 당연하듯이 심했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무관심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나,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하물며 눈앞에서 일어나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지켜볼 뿐이란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정서가 메말라져 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천하를 얻기 위해 목숨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인간의 문명사회가 가르쳐온 것이다. 즉 인간의 존귀한 가치보다는 재물에 더 눈이 어두운 인간들이 많아졌다. 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교만과 탐욕은 통제 불능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지배 권력이 인간역사에 대물림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목숨은 한갓 소모품에 지나기 않게 인식되었다. 어떤 미치광이는 지구상에 인간들을 싹 쓸어버리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하물며 수많은 인간들을 파리 죽이듯이 죽이는 게임이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된다. 이러한 미디어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인간들의 잔악성을 미화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토록 잔악성이 깊어지지 않았던 이천여 년 전에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말세의 징조들을 열거하셨는데, 첫째로는 거짓이 보편성을 띄게 될 것이며, 사랑이 식어질 것이며, 민족들과 나라들이 분쟁할 것이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자자질 것이라고 했다. 그중에 제일 먼저 거짓이 난무하여 진실을 흐리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고, 또한 진실하지 못하게 되어,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며, 서로 악한 마음들이 통용되어 저마다 천하를 얻고자 하며, 자식이든 이웃이든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뉴스에선 보험금을 위해 자식을 부모를 간접 살해하는 범죄가 늘고, 생명을 하찮게 여겨 태중에 아기를 분비물처럼 쓸어 내버린다는 것이나, 하물며 이러한 인간의 범죄를 법으로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가 올 것을 미리 아신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모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는 독재자의 사악함으로 수많은 인간들이 대학살을 당했다. 지금도 여전히 권력을 위해, 이념과 사상을 위해 수많은 인간들을 숙청하고 살해하며 정당화를 외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심, 이념과 전통을 위해 목숨을 쉽게 내어놓는다. 

  또한 중국어에서,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 즉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런 말이 조선에 유행어가 되어 저마다 죽을 명분을 찾았다는 말이 유행처럼 전해져 왔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은 언제든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희생된 자에 대한 동상이나 탑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면서 후손들에게는 명예(名譽)로 족쇄를 채워주는 꼴이 될 뿐이다. 

  그러한들, 죽은 인간에게는 무슨 유익이 되느냐고 예수는 말해주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후미에 하신 말씀에서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는 질문에 있다. 

  인간이 소, 돼지처럼 한번 키워서 귀하게 쓰임을 받고 버려진다면, 그토록 목숨을 위해 발버둥 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예수는 사람의 귀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 천하와 바꿀 정도밖에 안 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천하의 존재적 가치보다 훨씬 더 인간의 존재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하물며 한 인간의 창조에는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좀 더 설명을 한다면, 천지를 창조한 6일간에 창조의 섭리가 한 인간, 아담을 창조한 것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의 인체 속에는 천지의 섭리가 다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를 설명한다면, 인간의 인체의 원리는 천지, 즉 자연의 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특히 홍수 이후에 인간에게는 질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발생된 질병에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겠다. 외부에서 침투된 질병, 세균에 의한 질병에서는 세균을 제거하거나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서양의술로는 가능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인체 내에서 발생한 질병, 즉 암, 고혈압, 당뇨나 치매 등의 인체이상이 발생되어 일으킨 질병에는 자가 면역력이나 자가 항체 등의 자율적 면역기능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거나 이상이 생겨서 발생된 질병들에는 서양의술로는 상당히 위험한 행위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손발이나 콩팥과 허파 등 두 개씩 있는 장기나 인체에서는 하나를 제거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본주의 사상인 것이다. 즉 인간의 인체구조를 로봇의 기능구조와 혼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인체에도 역시 자가 치유와 자생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는 놀라운 신비함이 있는데, 그것은 육신의 신비함과 영혼의 신비함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영원한 의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동식물처럼 일시적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이다. 천하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은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창조주는 인간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자고 했던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신의 형상이 있다. 즉 영원한 존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제자와 무리들에게,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는가? 한 인간의 생명 속에는 천하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존재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 인간의 존귀함을 사악한 인간들은 무시하고 멸시하고 학대하고 살해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저항과 반항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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