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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stwons Aug 29. 2024

183. 삶의 진실

[책 속에 생각을 담다]

183. 삶의 진실

 

그러므로 이제 올바른 생각을 가집시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가 눈먼 상태에서 어리석은 것들을 사모하며 아무리 방해한다 할지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주님이 강림하시길 기다리십시다. 주께서 오시기를 그냥 사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일을 모든 일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일로 여기고 한숨과 탄식으로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반드시 구속주로 강림하사 악과 비참이 가득한 이 깊고 깊은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의 생명과 영광의 복된 기업을 얻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아멘)”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삶/ 존 칼빈 중에서>

  


   이 땅에 삶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선하신 선물 중 하나로 느끼며, 이 땅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제멋대로 살지만, 노년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인생을 마침과 같이 인생은 하나님의 자비의 그늘에서 시작되며,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깨닫도록 하십니다.

  삶 속에서 한숨과 탄식으로 소망을 얻지 못한다면 헛된 삶을 산 것입니다. 노년에 원망과 증오를 품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된다면, 그의 선하신 선물에 감사와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노년에는 더욱 본향을 그리며 마음을 비어 돌아갈 날을 기쁨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인생(人生), 이 땅에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철부지 모르던 시절에는 인생이니 삶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냥 현실에서 그날그날, 해가 떠오르면 대문을 발로 차고 밖으로 뛰어나가 동네아이들이랑 노는 것이 전부였었다. 조금씩 배우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지식에서 고집이 생기고, 자만심이 생기고, 목적이 생겼다.

  그런 것이 인생일까? 책과 신문과 방송을 접하면서 세상을 알게 되면서 인생의 성공이니, 훌륭한 사람이니,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인생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를 인지(認知)하면서, 철학에 매혹되어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개소리에 도도함이 하늘을 찔렀다. 이처럼 교만함은 없을 것이다.

  철학을 모르는 인간들은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며, 마치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멍청하게 쳐다보는 인간들을 바라보면 비웃기도 했었다. 이것이 바로 철학인이란 사실을 노년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니 진리를 알았을 때에 나 자신이 얼마나 위선자이며, 얼마나 무지한 자이며, 얼마나 교활한 자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위선자(僞善者)란 가장 거짓된 것으로 포장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철학자들이 위선자들인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철학자들을 존경해 왔고, 그들의 철학에 심취되어 왔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교활하게 거짓된 말들을 토해내었는가?    이 세상에는 얼마나 거짓된 이념과 사상으로 문화를 이루고 전통을 만들고, 국가관과 종교관, 세계관으로 철없는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지 않는가? 거짓된 지식을 배우면 거짓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인생이 고달픈 것일까? 많은 종교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죄가 커서, 어떤 노인은 한숨을 쉬면서 하신 말씀이, ‘다 내가 죄가 크기 때문이야~’ 또는 하늘에 벌을 받기 때문이야~’ 마치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하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하시는 분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면, 인생에 있어서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벌을 내리시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면,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인생에 고달픔은 인간들이 서로 만들어낸 원인에 있는 것이다.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여자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담이 에덴동산에 먼저 있었던 일과 각 동식물의 이름을 지워준 일 등으로 얼마나 자신을 높이고 여자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었겠는가? 선악의 나무 앞에 있을 때에 뱀이 그들을 유혹할 때에 여자는 아담에게 들은 것을 말했지만, 아담은 잠잠했었다. 그 열매를 먹은 후에 하나님이 물었을 때에 아담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말했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

하나님이 나와 함께 여기에 있게 한 여자가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어서 내가 먹었습니다.”(창 3:12)

  그러나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습니다.(창 3:13)   

  하나님 앞에 선 두 사람, 아담과 여자 중에 아담은 거짓된 마음을 드러냈으며, 여자는 사실을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자에게 있을 미래에 예언을 말했던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처럼 삶의 진실은 진리로 인도하지만, 거짓된 지식은 더욱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할 뿐이란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거짓된 삶에는 진리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서두에 이렇게 기록을 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 1:5)

  이처럼 세상은 점점 어두워가고 있기에,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생의 어둠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생은 더욱 고달프고, 외롭고,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인생을 고달프게 할까? 세상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점점 더 거짓된 것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하여도 진실한 관계에 있으면 마음은 편안하게 된다. 배운 것(거짓된)이 없어도 진실은 참(옳음)을 알게 한다. 탄식과 한숨이 있을지라도 삶이 진실하다면, 그 탄식과 한숨은 한갓 구름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한 삶에서 오는 탄식과 한숨은 더욱 진실하게 하는 등대와 같다. 하지만 거짓된 삶에서 오는 탄식과 한숨은 증오와 원망으로 더욱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될 뿐이다.       

추가, 거짓된 것은 어떤 것이든, 어떤 원인이든, 어떤 이유이든 인간에겐 헛될 뿐이다. 아무 유익도 되지않는다. 그저 거짓은 그말대로 거짓일 뿐이다. 거짓말, 거짓행동, 거짓사랑, 거짓.. 거짓..정말 거지같아서 마음을 더럽게 하고, 영혼을 어둠게 하고, 결국 허망하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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