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ustwons Sep 24. 2024

80. 심오한 은혜

[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80. 심오한 은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 4:19)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 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누가 6:35)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12)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 2:8)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9)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명기 5:10)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편 31:19)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요나 2:8)

~~~~~~~~~~~~~~~  Bible  ~~~~~~~~~~~~~~~~     


  하늘은 웬만하면 잘 참고 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다. 만삭이 된 몸으로도 하늘이는 잘 버티고 있었다. 가끔 땀을 많이 흘리기도 하지만 곧 평온을 찾고 안정을 취하였다. 오히려 하늘이는 어두움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의 몸속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을 자세히 느끼며,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넣으실 때에 한 생명이 살아나는 것에 대한 교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열을 하늘이도 누리고 있었다. 그러기에 하늘이는 산모의 고통을 힘들어하기보다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하늘이는 배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기와 공유하며 아기와 호흡을 나누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무거워지는 배를 따뜻한 자신의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자신의 힘든 것보다 아기의 노는 것을 함께 즐겼다. 

  그러자 하늘이는 아기가 점점 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아가야, 넌 거기에 더 있고 싶은 거지? 그러나 네 몸이 무거워지니 아래로 내려가는 거야. 나도 그랬었지.”

  하늘이는 그렇게 마음의 소리로 아기랑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늘이도 점점 아랫배가 무거워지면서 자주 통증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하늘이는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곤 했었다.

「여자여, 너는 아기를 낳을 때에 심히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늘이는 이 말씀을 떠오르면서, 에덴동산에서 두 사람을 쫓아내야 하는 하나님의 아픔을 기억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  중간 생략  ------------

“신촌 연세병원으로 갑시다.”

  하늘이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자 택시 운전수는 뒤를 힐끗 돌아보고는 서서히 출발을 했다. 택시 운전수는 산모의 안전을 위해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택시는 한강변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서강대교를 건너 연세병원으로 달렸다. 택시는 하늘의 집에서 연세병원까지 50분 동안을 달려서 왔다. 하늘은 달리는 택시 안에서 어머니의 몸에 기댄 채로 조금씩 꿈틀거리는 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늘 곁에 계셔서 위로해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오니 큰 힘이 됩니다. 내 몸에 아기를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홀로 아니하시고 우리가 함께 만들자 하신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함께 키워 가시오니 감사합니다. 이제 이 아기를 세상으로 내보내실 때에도 함께 하실 줄을 알고 믿습니다.’

--------------  중간 생략  ------------

  ‘아버지~ 내 몸에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나 봅니다. 도와주소서.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과 하와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알겠습니다. 하와가 첫아기를 낳을 때에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도 알겠습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첫아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에게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첫아기를 얻고자 합니다. 함께 하여 주소서. 아버지!’

  그렇게 하늘은 하나님 아버지를 외쳤고 자신의 몸에 아기에게도 말했다.

“아가야~ 이제 내 몸에서 나오렴. 나는 볼 수 없지만 너는 넓은 세상에 나와 나를 위해 살아다오.”

<인생소설/‘어둠의 사십 년’ 중에서>



   인간이 어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겠는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에는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신이 어디 있어?” 그러나 조금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을 바라보아라. 푸른 하늘을 바라보아라. 은혜가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된다. 산과 들과 바다에는 알 수 없는 생명들의 유희를 느끼지 않을까?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나 상생(常生)하며 살아가는지 말이다.

  그걸 아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꾸준히 살피시고 돌보시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러한 은혜가 온 땅에, 만민에게 베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신이 옹졸하다면 그러하지 않겠지. 조금만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편애하거나 차별한다면........ 그런 신을 섬기겠는가? 

  사탄의 특징은 무엇일까? 거짓을 바탕으로 된 것들이다. 즉 거짓은 사탄의 마음인 셈이다. 그러므로 사탄에게는 은혜란 괴로운 것이다. 은혜란 자유와 평강과 존귀함을 윤택케 하는 것이다. 즉 은혜는 창조자의 사랑의 향기인 셈이다. 그러나 사탄은 파괴와 억압과 분열을 즐기는 속성을 가졌다. 이러한 속성을 인간들은 지혜인줄로만 알고, 끝없이 그런 것을 위해 파워, 즉 위력(威力)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 심볼(Symbol)이 바로 시날평야에 있었던 영웅 니므롯의 정신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인간의 자태가 그러할지라도 여전히 그들의 세계 속에는 긍휼과 자비와 공의를 좇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석가가 그런 사람이다. 노자도 역시, 소크라테스도 역시, 그 외에도 역사 속에 의인들이 많이 등장했었다는 것이다. 

  오늘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어둠의 사십 년」의 인생소설을 읽으면서 놀라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에게도 은혜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억울한 일이어도 좋은 결과를 만나고, 불행한 일이어도 희망을 부어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진화론자들은 흔히 잘 쓰는 이념이 바로 돌연변이나 우연론으로 메우려고 한다. 그러나 이걸 알아야 한다. 참과 진실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이 어둠의 사십 년의 소설의 목적은 인생에 가장 불행하다고 하는 한 인간의 삶이 결코 불행하다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하지 못하는  한 여인의 인생에서 우리가 발견할 것은 은혜(恩惠)라는 것이다. 그것도 전지전능하신 분의 은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은 전지전능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궁금하다. 인간적인 한계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분을 알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분은 인간의 생각을 태고 적부터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인간이 한순간에 어떤 생각을 떠올리려고 하는 것을 오래전에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말이나 행동은 얼마든지 방향을 이리저리 바꿀 수가 있을지라도 생각의 흐름을 인간이 스스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체험한 저자는 확실히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왜 인간은 생각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할까? 그걸 지적한 분이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보통사람들 - 여기서 보통사람들이란 잘 길들인 인간들을 말한다. 즉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끝없는 이념과 사상에 교육되고 훈련된 자들은 그 이념과 사상에 바탕을 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지식인들은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둠의 사십 년의 주인공인 하늘이란 여인은 아주 놀라운 것을 알게 되고, 즉 참된 것을 알게 되고 어둠 속에 있어도 그녀는 어둠에 갇혀 있지 않고 밝은 빛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한 그녀에게는 임신을 하게 되었으며, 임신 중에서 그녀는 자신이 태중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창조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는 그녀는 왜 하나님이 여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에게는 왜 그런 고통이 없을까? 그걸 알아야 한다. 악의 뿌리는 아담에게서 온 것임을 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생명을 보존할 능력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 봐라! 인류역사를 말이다. 얼마나 악하고 잔인한가를 말이다.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오는가? 이 정도만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떼처럼 달려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놀랍게도 창조자의 생명을 보존하고 양육할 수 있는 권한은 여자에게 주셨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한 뿌리를 여자에게 심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것조차 아담의 후예들은 질투하여 무자비하게 여자를 학대하고 있지 않는가? 중동의 무슬림 국가들이 하는 행태를 보아라! 조선시대에 여성을 보아라! 어떠했겠는가? 이유 없이 여성학대를 해온 역사가 인류역사인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하늘, 그녀는 놀라움을 깨닫고 있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말이다. 그것을 자신의 출산의 고통을 통해서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을 말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떠나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계시다는 사실 말이다. 얼마나 심오한 은혜인 줄을 말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모든 게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잘되어진다고 생각한다. 무생물인 만물들은 그럴지는 몰라도 생명의 존재들은 결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심오한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생사화복(生死禍福)에는 하나님의 심오한 은혜가 붙잡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들이 종종 밑도 끝도 없이 던지는 말들, ‘불행 중 다행이다.’, ‘행운이다.’, ‘천만다행이다.’, ‘하늘이 도우셨다.’ 등등의 말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심오한 은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하여도 희망을 놓지 않으며, 억울한 일이 있어도 굳건히 사는 이유가 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을 이 소설, 「어둠의 사십 년」을 통해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15. 이름이 주는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