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독서와 생각 3편]

by trustwons


2. 너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한 마을처럼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면 무척이나 혼란스러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세계와 다른 문화를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네 삶의 방식이 유일하고 필연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만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온전히 너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한 마을이 되어가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어라.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앨런 맥팔레인 지음>



젊은이들은 세상에 대해 두려움이 크다. 그러면서 세상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기를 더 두려워한다. 오히려 유행, 문화, 집단 속에 파묻히기를 원한다.

반면, 유대인들은 철저히 ‘나그네 인생’을 인식하며 살아왔다. 국가도, 민족도 없이 흩어져 수백 년 동안 유랑생활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대인들은 다른 세계와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혜를 얻었고, 야훼의 절대적 가치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신의 뜻을 발견하면서..........



[단상의 글]

참으로 좋은 책을 얻었다. 그 당시에~ 사랑하는 자녀를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손녀에게 편지를 쓰는 할아버지로서,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의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에는 같은 마음이었기에 더욱 ‘보물’을 발견한 듯이 기쁨이 벅차올라왔었다.

이렇게 오랜 후에 다시 엽서의 글로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었던 것, 글에서 그때에 기쁨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어린 시절에 9살쯤 되는 나이에 한옥에 살면서, 한 동네에 사시는 부모의 고향사람인 할머니를 알게 되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동네아이들과 열심히 놀다가도 목이 마르면 그 할머니네 집으로 달려가 시원한 미수(전통곡물인 7~10가지의 곡물로 섞어 만든 음료)를 마시며 다정하게 맞아주신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떠오른다.

이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의 존재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마치 느티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는 그런 보금자리 같았다. 릴리의 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시라 생각된다. 또한 손녀딸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마치 하늘 아버지의 마음 같다. 특히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면,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힘들었으리라. 특히 오늘의 젊은이들이 말이다. 어린 손녀와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

이제는 성숙해져서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 추억들은 아주 소중한 보물과 같다. 지금 돌아보면, 손녀딸 릴리의 할아버지의 현명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좀 더 잘할 걸, 그런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역시 릴리의 할아버지와 같은 심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험한 세상, 급변하는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는 것을 재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경쟁의식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말이다. 아니 어른들이 사는 모습이 정글의 맹수처럼 늘 싸워야 하는 전투적 경쟁심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러한들, 결국은 다 이루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고, 아니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가고 말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세상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 비교의식, 상대적 성취감에 올인하려고 하고 있다.

문화와 문명이 풍부한 현대사회에서는 누리기조차도 버거운 사회적 산물들에, 마치 코앞에 먹이를 쫓는 개들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이,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렇게 말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들, 한 마을처럼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너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가르쳐준 글, 다문화 속에서, 또는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살아감에 있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함 같은 사실(事實)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한 마을이 변해가는 것처럼, 또는 한 마을이 되어가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즐겨라 말해주고 있다. 사실 어른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당연하듯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은 저항하는 인간들, 끝없이 변하는 세상에 대해 저항하는 인간들, 언론에서나 보도하는 것에서 흔히 보게 되는 저항하는 인간집단들........ 그들은 또한 경쟁의식과 비교의식의 카테고리(테두리)를 만들어 그들의 탐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더 큰 속박(굴레)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저항적인 삶을 위해서는 더 큰 굴레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객관적인 눈, 관점(觀點)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삶의 방식만이 유일하고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유대인들에 대해 이해를 한다면, 그들은 이 세상을 절대적 가치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나그네의 인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성경에서 야곱이 바로 앞에 섰을 때에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를 물으니, 야곱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또한 각 나라에 각 지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는 세상을 영원한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인류사에서 가장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민족은 유대인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중동에 작은 영토에 사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의식에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 영토에 극한 된 삶을 살지 않으며, 여전히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다른 세계와 다른 문화를 접하면 접할수록,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삶의 방식에 있어서 유일하고 필연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항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면서 능동적으로 자신들만의 삶을 개척해 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객관적 시선,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며,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설계해 살아갔다는 것이다. 손녀딸 릴리에게 할아버지는 그런 한 마을처럼 변해가는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또는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껏 즐기라고 말했다.

오늘날에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인 듯하다. 저는 그 방법의 하나로써 홀로, 또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담력을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산(山)은 인자(仁者)를 낳으며, 바다(海)는 지자(智者)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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