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욥기]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깨달음의 구절[성경말씀: 욥기 14장]
“누가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깨끗한 것을 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4절)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14절)
“주께서 지금 내 발걸음을 세고 계시니, 주께서는 내 죄를 뒤쫓지 않으시고, 내 허물을 자루 속에 넣어 봉하시고 내 죄를 꿰매어 덮어 주실 것입니다.”(16,17절)
깨달음의 글
욥은 말하기를,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 하며 인생의 허무함과 인류의 첫 여인에게서 난 후손들은 다 그러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즉 인생의 영화는 꽃과 같은 것, 생명이 그림자 같아서 속히 사라짐과 같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부귀영화를 꿈꾸고,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애쓴다.
욥은 단순한 신앙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옳게 알았고, 하나님의 뜻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분이다.
우리는 세상의 지식이 미약하나 믿음만 있으면 되지 한다. 또 하나님을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믿는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이냐? 오늘날에 하나님은 여전히 욥과 같은 신앙인을 원하신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의 양과 행실로 선한 사람인 척한다.
그러나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에서 낼 수 있겠느냐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는 세상을 바로 안 것이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학식으로 선한 사람인양 행한다. 부자는 재물로 여유생활을 하면서 고상한 사람인양 한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신처럼 행세를 한다.
그러나 욥은 확실하게 말했다. 하나도 없다. 더러운 것에서 결코 깨끗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은 스스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스스로 거룩한 척할 수 없으며, 남을 정죄하는 교만함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자라면 더욱 겸손할 것이다.
성직자라는 명칭도 교만한 자의 칭호일 뿐이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스스로 성직자라 말하지 않았다. 선한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했다. 어찌 죄인의 후예들이 선한 자라니, 성직자라니, 거룩한 척하며 거드름을 피울 수가 있겠는가?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욥은 그의 인생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인생의 날수와 달수를 하나님이 정한 것을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욥은 그날 놓임을 받는 날을 기다렸다고 하였으며, 그동안을 참으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루하루 인생을 소중히 여긴 것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낸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이요. 신실한 사람이라 했으니, 날마다 근면하고 근신하는 삶이었다. 그러한 욥에게 고통이 왔으니, 오직 주님께서 그의 죄를 싸매시고 허물을 봉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나 비천한 자는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다. 욥은 그 이치를 알았으니 자기의 살이 아프고 마음이 슬플 뿐이라 했다. 오늘날에 믿음이 이러한 심오함에 이르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단상의 글]
누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는가? 누가 스스로 하나님을 알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솔로몬도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에 의해 얻은 지식들이나,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으니, 그의 출생함이 들 나귀 새끼 같다.”(욥 11:12)고 말했다. 또 에베소서에서는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엡 4:17)고 했다. 또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라고 말했고, 또 욥은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 하나 다 보시느니라.”(욥 11:11)라고 말했다. 즉 인간의 세상에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어떤 지식도 다 헛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그 인생조차도 헛될 뿐이라는 것이다.
잠시 인간의 부귀영화가 있을지라도 곧 사라지게 되니 헛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인생도 순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안다 하는 것들은 모두 헛된 것이며, 안개처럼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떤 것도, 어떤 수단으로도 참된 것을 알 수 없으며, 진리도 하나님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로만 참된 것을, 진리를,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했는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한 14:6)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를 알며,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니 술에 취한 자처럼 거짓된 것으로 방탕하게 살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허망한 것을 추구하고, 그 마음이 어두움에 머물러 있는 자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며, 감사함도 없는 모습을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들을 가만 두심에는 상관하지 않으심이 아니라 살피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가?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자녀와 자녀가 아닌 것을 보게 됨을 말이다. 그리고 이상히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억지로 전하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성령이 이에 참여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 깨달음은 없으면서 체면상 믿는다고 가증한 신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염소와 같은 예수쟁이만 양성하게 될 뿐이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믿음 없는 보습을 보이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또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보험설계사가 하듯이 온갖 설득과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설득하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깨닫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하게 되거나, 편리상 믿겠노라고 거짓된 신앙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자가 복음을, 진리를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했다. 이처럼 먼저 믿는 자들로 진리를, 복음을 전하게 하시나 추수할 대상은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먼저 믿는 자들로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셨으며, 복음을 받아들여 믿게 함은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를 성령이 구별하여 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누가 8:10)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 알지만, 자녀가 아닌 자에게는 그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하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에게 억지로 믿게 하려 하면, 그들은 거짓 신앙을 보이며 믿는 자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 하시면서 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또한 외식하는 자들인 것이다. 즉 염소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저들로 억지로 믿게 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릇된 전도로는 전도상이나 전도왕으로 추대하는 전도행사로는 성령의 일을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이러한 전도는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에서 낼 수 있겠느냐 하나도 없다고 했으며, 더러운 것에서 결코 깨끗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하였다. 사람이 하는 일은 바로 이러한 짓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은 스스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욥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론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령이 진리를 알게 한 자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이며,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스스로 높임을 받으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며, 거룩한 존재로 칭송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겸손하지 않는 자들은 마음이 어둠에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욥의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믿음을, 지식을, 진리를 알기를 바란다.
“너희는 진리를 알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