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하늘은 참으로 높고 푸르렀다. 구름들도 멀리 하늘을 걷는다. 어느덧 가을이 깊이 들어왔나 보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건물이 있는 정원에는 단풍들이 만발하여 정원의 잔디마다 단풍잎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은 부모님과 함께 연세병원을 다녀와서는 광일이가 다니는 연세대학교 정원에 오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하늘은 눈앞에 보이는 사회복지학과 건물 앞에 정원에 와 벤치에 부모님과 함께 앉아 있었다.
가을바람에 낙엽들이 하나 둘 나무에서 떨어져 내렸다. 다행하게도 앞을 볼 수 없는 하늘에게는 떨어지는 낙엽은 볼 수가 없었다. 하늘은 가을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스쳐가는 느낌에서 가을이 온 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늘은 바로 앞에 낙엽 하나가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을 알고, 그 낙엽을 손으로 요리조리 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랬었지. 당신이 내게 이 낙엽을 주었었지. 이 낙엽은 은행나무 잎이라고 말했었지. 노란색일 거야. 그랬어. 낙엽이 결이 있고, 질긴 편이야.’
하늘은 호나 중얼거리며 은행잎을 가만히 자신의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금살금 은행잎 낙엽을 만지고 있었다. 옆에서 이를 본 하늘의 어머니는 강인을 떠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마침 손이 닿는 곳마다 다른 낙엽들이 있었다. 하늘의 어머니는 허리를 구부리어 그 낙엽을 하나 집어서는 하늘의 손에 지워주었다. 하늘은 어머니가 주신 낙엽을 만지더니 이번에는 그 낙엽을 얼굴에 살짝 대보고는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냄새가 없어. 그리고 모양이 복잡해. 이것은 단풍잎이라고 했지. 색깔은 붉은색이었던가? 그래 맞아. 붉은 단풍이라고 그랬어.’
하늘은 이렇게 단풍잎들을 만지면서 강인이를 또 생각하고 있었다. 강인이와 함께 공원을 거닐며 나무들에 대해서 말해주었던 것들을 하늘은 되새기고 있었다.
다시 가을바람이 불어와 하늘의 머리카락을 흩으렷다. 하늘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하늘은 바람을 잡으려는 듯이 손을 뻗어서 휘저었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하늘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하늘의 아버지는 오늘은 일이 없어서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하늘이가 병원에 가는 날에 따라오셨다. 하늘의 어머니는 하늘의 아버지인 남편의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여보, 고마워요. 오늘 쉬는 날인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당신과 하늘이랑 이렇게 나들이 나온 게 얼마만인가요.”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군요. 하늘이 어릴 적에는 그래도 가끔은 공원에도 가고 그랬었지. 그동안 당신이 많이 고생을 했군. 고마우이.”
“뭐, 제가 고생하긴요. 다 하나님이 이끌어주신 덕분이지요. 전 하늘이와 함께 있을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이 아이가 어찌 그렇게 평온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도 그랬다오. 아침마다 하늘이 바라보면, 마음이 왜 그리 편안해지는지 몰라요. 그래서 난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했다오.”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착한 광일을 주셔서 하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지금도 이렇게 하늘이랑 광일이가 다니는 대학교의 정원에 앉아 있는 것만도 꿈만 같아요.”
“광일이....... 참 착하지. 어쩜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잘 챙겨주는지 볼 때마다 놀라고 감사했다오. 이런 손자를 하나님이 주셨구나 하는 감사함을 아침마다 한다오. 벌써 광일은 대학교 2학년이 되었네.”
“네, 이 학교에 들어온 지 벌써 2년이 되었어요. 광일이가 태어나기 전에 하늘이가 임신 중에 여기 이 학교에 온 적이 생각이 나요. 어떻게 이 학교에 광일이가 다니게 되었는지....... 참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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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늘이랑 여기 자주 오는 거였군. 오늘은 하늘도 아름답네.”
“요즘 하늘이가 자주 기력이 없어 보여요. 자주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요.”
“당신이 하늘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깐 하늘이 건강을 잘 살펴보아요. 나도 될 수 있으면 쉬는 날을 많이 갖도록 해야겠어. 의사 선생님도 하늘에게 특별한 증상은 없다고 하지 않아요.”
“하늘의 건강을 좀 챙겨야겠어요. 보약이라도 먹였으면 해요.”
“그래, 광일 아빠가 오면 함께 의논해 보도록 합시다. 함께 한방병원에 가보도록 합시다.”
“한방병원은 경희한방병원이 최고라고 하던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광일 아빠와 상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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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어머니는 점자판을 꺼내어 하늘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하늘아, 무슨 생각을 하니?”
“광일이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오자고 했구나.”
“네, 대학교가 뭘까요? 뭘 배울까요?”
“궁금하구나? 넌 학교에 가본 적이 없지.”
“학교? 어떻게 생겼을까요? 아이들이 많았어요.”
“광일이를 생각하면 되겠다. 선생님도 만났었지?”
“아~ 선생님! 참 좋은 분들이셔요. 뭘 가르칠까요?”
“넌 뭐가 궁금하지?”
“나, 내가 누굴까?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강인은? 광일이도 보고 싶어요.”
“미안하다. 네가 이렇게 돼서.......”
“엄마! 미안해하지 마세요. 난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나도 네가 있어서 감사하단다.”
“지금 저는 행복해요. 내 곁에는 엄마, 아빠, 광일이 그리고 강인 씨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다행이구나. 너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단다.”
“저도요. 나에게는 유일한 분이시지요.”
“그런데, 요즘 네가 기운이 없어 보인단다.”
“네 알아요. 요즘은 자주 주님을 뵈어요.”
“주님을?”
“네.”
~~~~~~~~~ 후미 생략 ~~~~~~~~~~~~
<이하늘의 인생소설, 어둠의 사십 년 중에서>
오늘은 5월 30일인데, 참으로 하늘이 푸르렀다. YMCA에 다녀와서는 다시 읽어보는 하늘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생존해 있는 것만 같았다. 날 때부터 볼 수도 없었고, 듣지도 못하고 거기에 말도 하지 못하는 기구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생을 살고 난 후에는 세상을 떠나간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하겠지. 솔로몬도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도서 1:2,3)
그렇다. 어느 누가 원해서 세상에 태어났겠는가? 하지만 태어난 인간들은 마치 당연한 듯이 세상을 손아귀에 잡아넣으려고 하지 않는가? 그 조그만 손안에 얼마나 가질 수 있을지? 참으로 인생을 바동바동 사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 안쓰러워진다. 또는 온 세상을 가진 듯, 교만한 모습을 바라보면 그렇게 불쌍해 보인다. 결국은 백 년도 못살고 죽을 걸 말이다.
세상을 사는 인간들 중에서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사는 것을 보면, 뭐가 그리 대단할 걸까? 어릴 적에는 부모들이나 학교와 사회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비교의식을 심어주어 경쟁심을 갖게 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결국 눈앞에만 바라보게 할 뿐이란 걸 깨닫지 못하는 ‘그 인생’에는 솔로몬의 말대로 헛된 짓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어둠의 사십 년’에 여주인공인 이하늘에게서 뭔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며 소설을 쓰게 되었다.
전혀 남들과 비교하며 살 수가 없는 조건을 가진 여인, 오직 그녀가 기억하는 것들은 모태 속에 있을 때에 들었던 것뿐이고, 태어나선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평온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인간들이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비교할 때가 아니겠는가?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이들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누군가 죽은 분이 있어서 제사를 드리지 않는가? 그런데 두 아들은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동생을 시기하여 죽여 버렸다. 만약에 동생이 없고 혼자 제물을 드렸을 때였으면, 어떠했을까? 하늘에 원망을 했을까?
어떻든, 인간들은 태어난 후에는 세상의 지식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악한 생각을 하도록 가르치지 않는가? 인간들은 그렇게 비교하며 차별(분리)하며 빼앗고 죽이고 하면서 시기(猜忌)와 질투(嫉妬)에 의해서 헛된 것들에 인생을 다 허비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소설에 주인공인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그녀는 질투도 시기도 뭔지 모른다. 또한 비교하거나 차별할 수도 없다. 오직 그녀에게는 좋은 부모가 곁에 있었고, 좋은 남편을 만났고, 착한 아들과 관계를 가질 수만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고맙게도 일찍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복이 아니겠는가? 태중에서부터 들었던 성경말씀과 찬양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대부분의 아기들은 태어나면서 태중에 있었던 것을 다 잊어버린다. 그 이유를 알까? 사람의 인생은 세 번 있다는 것을 말이다. 태중에 이백팔십일의 삶과 세상에 나와서 길어야 백이십 년의 삶과 그리고 사후에 인생을 아는가?
그녀는 철저히 그렇게 살아감을 인지(認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태중에 아기가 출산할 때에 일시 죽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을 사는 인생도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에다 죽을 때엔 모든 것을 잊고 지워진다는 사실도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후에는 태중에 일을 기억 못 하고, 세상에서 살다 죽으면 세상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사후에 심판이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다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예가 있다. 그것은 노인에게는 지난 과거의 일들에 잊지 못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일들이 소록소록 생각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쓸데없는 짓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도 못 하는 그녀에게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지으신, 낳으신, 하나님과 부모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의 이야기 중에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에는 놀라운 메시지가 있다. 첫째는 그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했다. 둘째는 맹인이 예수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셋째는 맹인이었던 그는 다시 예수를 만나고, 예수가 그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질문했을 때에 그는 믿는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절까지 했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맹인이었던 그가 말하기를,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구나.”하며, 볼 수 있는 자들이 그걸 알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다.”는 말씀인 것이다.
여기서 보게 한다는 것은 눈을 뜨게 됨처럼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이 깨우치실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나 항상 그녀는 주님을 뵌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녀가 40년만 살게 됨도 믿음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런 그녀에게 하늘로 부르심이 다가오면서 기력이 쇠해져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부분을 써 내려갈 때에 저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비록 소설이지만 말이다. 그녀가 하늘로 가게 됨에 아쉬움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후미에 작가의 마음을 추신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추신>
오늘의 하늘이에 대해 글을 쓰기 전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한참 동안을 고민하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로 하나님께로 가야 하나, 아니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늘이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행하게도 하나님은 저에게 좀 더 함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감사하며 가슴이 많이 설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