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내 곁에 늘 계셔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113. 내 곁에 늘 계셔


『김 박사는 박 간호사에게 보약 팩 하나를 건네주면서 이하늘에게 드시게 하라고 하고는 진찰서류를 건네주었다. 박 간호사는 김 박사의 지시에 따라 보약 팩 하나를 데워서 이하늘에게 먹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강인이와 하늘의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실을 나왔다.

잠시 강인이는 박 간호사와 대화를 나눈 뒤에 광일의 할머니와 하늘이와 함께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차에 태운 후 강인은 운전석에 앉더니 광일에게 폰으로 전화를 하였다.


“아들, 우리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마쳤다. 너에게로 갈까 하는데, 괜찮겠니?”

“네, 저도 도서관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중이었어요. 오시면 여기서 점심을 함께 하셔요. 기다릴게요.”

“그래, 알았다. 좀 있다 보자!”

“네, 도서관으로 오셔요. 기다리겠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그렇게 광일이와 대화를 나눈 강인은 폰을 끄고는 광일의 할머니께 집으로 가는 길에 광일이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광일의 할머니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강인은 자동차의 시동을 켜서는 차를 몰아 경희대 한방병원 주차장을 나왔다. 그리고 경희대를 떠나 거꾸로 청량리역을 지나 동대문을 지나 종로 길을 따라 달렸다. 차 안에서는 하늘은 어머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는 자는지 아닌지 너무나 조용히 있었다. 광일의 할머니는 딸 하늘을 팔로 감싸 안으며 머리를 하늘에게로 기울여 기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강인은 백미러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차를 운전해 서대문 방향으로 달렸다. 자동차는 이화여대를 지나 연세대학교 방향으로 좁은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더니, 곧 연세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서관 건물 쪽으로 가서는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강인은 하늘이와 광일의 할머니를 차에서 내려 모시고는 도서관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도서관 건물 정원에서 광일은 책을 보고 있었다. 마침 광일은 책을 보다가 정원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오는 것을 보았다. 광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에게로 가면서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어~ 나와 있었구나. 많이 기다렸지?”

“아뇨~ 저도 조금 전에 나왔는걸요. 우리 학교 구내식당에서 먹어요. 맛있어요.”

“그래, 들었다. 네 엄마도 맛있다고 하더구나!”


광일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를 모시고 구내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오늘도 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광일의 엄마, 하늘이도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광일의 안내로 도서관 건물의 정원을 산책을 하였다. 강인은 하늘에게 점자판으로 말을 걸었다.


“여보, 오늘 어땠어요?”

“좋았어요. 특히 의사 선생님이 기도해 주니깐 마음이 편해졌어요.”

“김 박사님이 기도하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럼요. 제 두 손을 꼭 잡고는 기도하는데, 마치 주님이 제 손을 잡아주었던 것과 같았어요.”

“그래? 그랬구나! 주님도 거기 계셨구나.”

“요즘은 주님이 내 곁에 늘 계셔.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셔요.”

“음......... 당신은 나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구나.”

“당연하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랬는걸. 이제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거지.”

“그렇구나! 조금은 셈난다.”

“당신답지 않아~”

“당신도 얼마 남지 않았네.”

“뭐가?”

“알면서.......”

“당신도 같이 가자! 내가 주님께 말해줄까?”

“그럼 광일이와 부모님은?”

“그렇구나! 잘 부탁해! 그리고 사랑해!”』

<이하늘의 인생, 어둠의 사십 년 책에서>



이제 사십을 바라보는 이하늘, 아들 광일이를 얻게 되는 날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하늘은 종종 힘없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주님이 하신 말씀,

“너는 아들과 이십 년을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녀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도, 부모도 잊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느덧 아들 광일이가 열아홉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자주 주님이 찾아오시나 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힘없이 축 누려지는 몸에 비하여 그녀의 마음만은 편안하였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가족들에게는 찹찹한 심정일 것이다. 그녀의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자주 병원을 찾게 되고 그랬던 것이다. 보약일도 먹였으면 하는 생각에 그녀의 남편인 강인은 장모님과 함께 하늘이를 데리고 경희대 한방병원을 찾아갔던 것이었다. 마침 강인의 모친이 투병 중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박 간호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믿음이 좋은 김 박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그녀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잘 마무리하도록 주님이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참 평온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인생은 예고 없이 시작되었다가 예측도 없이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음을 성경 속에 인물들에게서 깨닫게 된다.

노아홍수 이전에 에녹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가 죽지 않고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가고,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에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다윗도, 여럿 선지자들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특히 높은 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 예수에 대하여서 기록된 복음(마태 17장, 마가 9장, 누가 9장)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인본주의 사상으로 바라보는 신앙에서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가 결코 거짓이 없는 진실하다는 믿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 시대에 와서 함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며, 그 인생에 대해서는 그 인간의 자유의지로 살아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핑계치 못할 것임은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상을 어떻게 살았든지 간에 그 인생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의 과업인 것이다. 그래서 곤고한 인생을 통해 그 해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석가는 그 해답을 찾고자 하였으나 해답보다는 해법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즉 인생의 곤고함에 대한 해법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이 ‘부처의 깨달음’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한 비유를 들어 말했다. 즉 탕자의 이야기에서 말이다. 아버지를 떠나 세상의 온갖 향락을 즐기다가 곤고해지자 그는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고는 돌아간 이야기이다. 이처럼 인생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곳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멋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탕자처럼 향락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 인간도 역시 진실에 대해서는 외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인생은 각자에 주어진 삶의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죽는 것은 여러 가지다. 어떤 인간은 긴 투병 중에 가고, 어떤 인간은 사고로 가고, 또는 이런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들에게는 불쌍히 여기거나, 불행하게 여기거나, 원통하게 여기거나, 아쉽게 여기거나 하겠지만.......

결국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두 길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본향을 바라보는 빛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한 어둠의 길인 것이다.

여기 하늘은 어둠의 길이 아닌 빛의 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녀는 평생을 어둠 속에서만 살다가 빛의 길로 간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지만, 그녀는 짧은 인생이지만 소중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섭리와 깊은 사랑을 깨달았던 여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해 준 것에서 말했듯이,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다.”(요한 9:39)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이 맹인에 대하여 요한복음 9장 전체에 기록되어 있으니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까?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더는 말하지 않아도 자신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이 되는지 말이다.

그녀는 늘 주님이 자신의 곁에 계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었고, 또한 그가 부르심이 다가온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참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보게 된다.


* 오늘은 너무나 힘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매우 흡족한 마음이 되었다. 주님이 곁에 계심을 깨닫도록 보게 하신다는 것을 말이다. “주님이 내 곁에 늘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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