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창조하신 모습들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114. 창조하신 모습들


『마침 광일은 식물원 안내책자를 받아서 식물원에 있는 식물들의 이름들을 찾아가며 엄마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며, 그리고 어떤 식물은 엄마가 직접 만져보도록 해주었다.

하늘은 아들 광일이와 함께 보이지는 않지만 식물들의 모습이나 질감을 그리고 냄새 등을 확인하면서 즐거워하였다. 하늘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쩜, 우리 아들은 아빠를 닮았을까? 이처럼 내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럽구나.’


하늘은 광일이와 함께 남산에 있는 식물원에 각종 식물들을 살피고 관찰하면서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른다.

하늘은 성경에서 읽었던 에덴동산에 대한 상상을 식물원에서 직접 확인을 할 수 있어서 감격과 감사함을 하나님께 마음으로 드리고 있었다.

이때에 하늘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있었던 광경들을 식물원에서 나무들과 잎과 꽃들을 살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셋째 날에 하늘 아래 물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땅을 들어내신 후에 그 땅 위에 온갖 식물들을 창조하실 때에 광경을 하늘은 생각하며 감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일은 엄마가 식물원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무엇인가 환희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점자판으로 물었다.


“엄마! 뭘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응? 천지를 창조하신 모습을 생각하고 있단다.”

“어떤 창조?”

“셋째 날에 땅 위에 온갖 식물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들이 말이다.”

“어떠했는데요?”

“하나님이 식물들을 종류대로 땅 위에 내라 하실 때에 말이다.”

“그게 어떠했는데요?”

“봐라! 순식간에 식물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란다.”

“그럼은요?”

“땅 위에 가종 식물들이 있을 곳에서 싹이 돋아나고 자라고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보신 거란다.”

“일순간에 생긴 게 아니군요.”

“그렇지. 봐라! 그 광경을 상상해 봐라! 얼마나 놀랍지 않니?”

“엄마~ 엄마가 더 놀라워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성경의 말씀을 천천히 묵상하면 놀라움을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했을 때도 그 광경을 보셨겠네요?”

“그렇지. 혼돈과 어둠 속에서 빛이 나타나면서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는 광경을 하나님은 보신거지.”

“엄마, 최고야~ 더 말해줘요.”

“오늘이 몇 월이지?”

“4월이에요. 잔인한 달이라고 하잖아요.”

“왜? 잔인한 달? 아니다.”

“그럼, 뭐예요?”

“4월은 온갖 식물들이 창조 때처럼 만발하는 달이란다.”

“4월을....... 그래요. 모든 식물들이 살아나는 달이네요.”

“그래, 하나님은 사계절 중에 4월을 좋아하시지.”

“4월을 요?”

“그럼, 그때 셋째 날을 연상하시는 것이지. 모든 식물이 피어나는 모습을........”

“아~ 그래서 부활절도 4월이에요.”

“오~ 우리 아들 역시 똑똑하군.”

“엄마 아들이잖아요.”


하늘은 광일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 기뻐했다. 그리고 광일이와 식물원에 있는 각종 식물들에 대해 관찰할 수 있어서 더욱 기뻐했다. 광일이도 엄마가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어서 매우 기뻤다. 또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광일이 할머니도 하늘이가 힘들어하지 않고 매우 적극적으로 식물들을 관찰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계셨다.

그렇게 식물원을 구경하고 나온 엄마와 할머니를 모시고 광일은 식물원 안에 있는 카페로 갔다. 카페에서 광일이와 그의 엄마와 할머니는 커피와 다양한 맛있는 빵들과 함께 점심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식물원을 나와서는 남산 분수대에 왔다.』

<이하늘의 인생소설, 어둠의 사십 년 중에서>


잔인한 달, 4월은 어찌 보면, 여성들에게는 잔인한 달이라 할 수도 있겠다. 봄바람은 여인들을 설레게 한다. 거기에다 곳곳에 푸릇푸릇 돋아나는 파란 풀과 나무의 어린잎들이 더욱 마음을 설레게 한다. 거기에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면 참말로 견디기 힘들겠지. 왜 그런지 아느냐? 여성에는 창조자의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창조자의 마음이 동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여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남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 4월에 화사한 날씨에는 더욱 가슴을 뛰게 만들지. 찬란한 햇빛과 푸릇한 잎들과 화사한 꽃들이 어울려서 천지창조의 환희를 되살리게 하거든. 그러하니 얼마나 애타는 마음이겠는가? 그걸 역으로 표현한 것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볼 수 없는 하늘에게는 봄바람과 봄기운을 피부로 느끼며 마음이 설렜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하늘은 일찍이 거실에 나와 창가에 앉아 있었지 않았을까?

이때에 사랑하는 하늘의 아들이 아파트 정원에 핀 개나리꽃을 꺾어와 주었을 때에 하늘은 한없는 기쁨에 젖었을 것이다. 비록 향기는 없어도 하늘은 그 꽃을 코끝에서 봄의 향기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하늘의 나이가 마흔이 되는 해에, 그리고 아들 광일의 나이가 스물이 되는 해였던 것이다.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이 해에는 하늘이를 하늘 아버지가 데려가실 해인 것을 말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들의 믿음인 것이다. 하늘이는 물론, 그의 부모도 그의 남편과 아들도 알고 있지만,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믿음 말이다. 이제 행복할 날만 남았을 텐데 말이다. 이들처럼 놀라운 믿음은 순종하는 거룩한 믿음에서 온 것이다. 순종(純宗)은 오직 창조자의 하나님께 대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권력자에게나 웃어른에게 순종하라고 강요하며 가르치고 있다. 이런 세속적인 순종은 거룩한 순종과는 비교될 수 없는 거짓된 바탕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신(神)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결코 인간이 인간에게, 피조물이 피조물에 순종하게 하는 것은 큰 죄악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유사한 용어로써는 복종(服從)이 있다. 특히 폭력사회에서나 깡패집단에서 종종 쓰는 용어이다.

그러나 순종은 근본이 진실(眞實)과 선의(善意)에 있는 것이다. 거짓된 순종은 있을 수 없고, 악의로 순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순종할 대상은 누구이겠는가? 거짓이 없는 분과 악의가 없는 분이어야만 한다. 그런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뿐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그리 말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말하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말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는 없느니라.”」(마가 10:17,18)

그러하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선한 자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할 대상은 오직 선하신 하나님뿐인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지녔기에 하늘도 그의 부모도 그의 남편과 아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는 얼마나 죽음 앞에서 받아들이지 못하여 원망과 절망과 분노로 인해 남은 자들에게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말이다. 그걸 아는가?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인간의 권한 밖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직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살아있는 동안에 인간이 하는 일들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人生)에 대한 한 많은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여기서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서 다시 올리는 글은 하늘이가 식물원에서 수많은 식물들을 관찰하면서,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볼 수 있는 눈보다 볼 수 없는 눈으로 더 깊은 것을 보고, 더 큰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이처럼 다양한 꽃들과 그들의 특징들을 발견하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움에 환희를 느꼈던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일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에는 반듯이, ‘보시기에 좋았다.’(That is Good)의 감탄사를 삽입하신 것이다. 여기서 보시기 좋았다는 것의 의미도 매우 놀랍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좋아!’ 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고 크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고 하신 뜻에는 창조된 피조물에서 선하고, 조화롭고 참됨이 이루어진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창조하신 모습들이, 마술사나 요술사가 기괴한 장난으로 보이는 마술쇼나 요술부림은 철저히 속임수에 바탕을 둔 것임을 알면서도 재미있어하는 이유는 속임수의 신기에 있다. 요즘에는 다양한 영상프로그램이 발달하여, 조작영상을 실제처럼 느끼게 만들어 즐기며, 우둔한 인간은 진짜인 줄로 믿는다. 그래서 이런 요상한 기술이 돈벌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의 모습들은 그렇지 않았다.

창조자 하나님은 마술사나 요술사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늘은 보았던 것이다. 천지만물이 창조되어지는 모습을 창조자 하나님은 즐기셨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천사들도 함께 보고 즐겼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될 때마다 ‘보기에 좋았더라.’고 찬사를 보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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